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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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재] 1월 1일 49재 법문
종범스님 2024-01-01
금일 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수 生也猶似 水中印月 死也還是 無跡晦月 생야유사 수중인월이요 사야환시 무적회월이라隨緣隱現 依舊如然 一輪空月 孤朗碧天수연은현은 의구여연이나 일륜공월은 고랑벽천이로다나무아미타불 오늘 이렇게 영가를 극락세계 보내기 위해서 재를 모시고 공덕을 닦고 법문을 듣고 있습니다. 극락 가는 길이 너무도 쉽고 가깝고 간단하니까, 오늘 재를 잘 모셔서 극락세계 바로 가시도록 잘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법은 생사는 없고, 마음은 항상 하고, 머무는 데는 극락이다. 이걸 깨달으셨어요. 생사는 없다. 본무생사(本無生死), 마음은 항상 하고 일심은 상주하고, 본무생사 일심상주(常住). 항상 상, 머물 주. 생사는 본래 없고 마음은 항상 머물러 있고, 항상 머무는 한마음이 있는 곳은 극락세계다. 그걸 깨달았거든요. 그래서 극락세계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얻은 곳이에요. 극락세계는 건축하듯이 만든 데가 아니고, 깨달음으로 얻어진 것이다. 예를 들면 꿈에서 굉장히 고생을 하다가 꿈을 탁 깨니까 그 꿈에서 본 건 없고 본래부터 있는 평시현상을 얻었다. 그러면 그 평시 현상을 사람이 손으로 만들었냐? 아니고 꿈을 깸으로 말미암아 평시 현상을 얻었다 이거죠. 그럼 평시 현상을 어떻게 이뤘느냐. 꿈을 꿨기 때문에 이룬 거죠. 그럼 생사가 왜 있냐. 한마음이 미혹해서 생사가 있고, 한마음이 깨달음을 얻으면 한마음은 항상 하고 극락세계는 여전하다. 그걸 깨달은 게 부처님이거든요. 생사는 본래 없고 한마음은 항상 하고 극락세계는 그대로 있다. 그래서 첫마디가 생야유사 수중인월이요(生也猶似 水中印月), 태어난다고 하는 것은 물속에 달이 비치는 거와 같다. 달이 물속에 비춰서 물가에 가서 보면 달 모양이 보이는데, 달이 물속에 떨어진 것도 아니고 물이 달 있는 대로 올라간 것도 아니고, 그냥 보이는 거예요. 이걸 인연법이라 그래요. 물도 가만히 있고, 달도 가만히 있는데, 그 물가에 가면 물속의 달이 보인다. 그게 인연법이다. 이 죽고 사는 건 다 인연법으로, 현상은 보이는데 실상은 없다. 사야환시 무적회월(死也還是 無跡晦月)이라,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또한 무적회월, 자취없는 그믐달과 같다. 그믐날 되면 달 모양이 하나도 안 보이는데, 모양만 안 보일 뿐이지 달은 그대로 있다. 수연은현(隨緣隱現)은, 인연 따라서 달이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하는 것은 의구여연(依舊如然)이나, 옛날부터 그냥 항상 있는 일이나, 일륜공월(一輪空月)은, 하나의 둥그런 달바퀴가 허공에 그대로 있는 것이 공월인데, 물속에 비친 달을 수월이라고 하고, 물 수자, 허공에 있는 달을 공월이라 그래요. 일륜공월은, 한 일자, 바퀴 륜자, 하나의 둥그런 모양으로 보이는 허공의 달은 고랑벽천(孤朗碧天)이라, 홀로 밝다. 이걸 고랑이라 그래요. 외로울 고자, 밝을 랑자. 푸른 하늘에 홀로 밝다. 물속에 달이 보이든 그믐달이 돼서 달이 안 보이든, 초생달이든 또 지는 달이든 뜨는 달이든 여러 가지 모양이 있지만, 실제 달은 일륜공월인데, 한 바퀴 허공달인데, 푸른 하늘에 홀로 밝은 것이 한 바퀴 허공달이다. 그래서 사람이 태어나기도 하고, 늙기도 하고, 세상을 떠나기도 하는데, 이 일심상주, 상주일심, 항상 머무는 한 마음. 마음이 항상 머무는 세계는 달이 보이든 안 보이든 아무 상관없이 홀로 밝은 거와 같이 생사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거죠. 그걸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일심은 항상 머물고 생사는 본래 없다는 걸 딱 깨닫는 순간에 그것이 생사해탈이고, 그것이 극락왕생이에요.생사해탈 극락왕생. 본무생사 일심상주. 그 도리가 극락세계 가는 도리에요. 一切唯心 心外無法일체유심 심외무법心外無法 一切唯心심외무법 일체유심 그럼 이제 불교에서는 뭘 가르치느냐. 모든 것은 마음이다. 생사도 마음이고, 극락도 마음이고, 해탈도 마음이고, 그래서 일체가 유심(一切唯心)이다. 일체가 오직 마음이다. 이게 부처님이 깨달은 거예요. 일체가 유심이다. 심외무법(心外無法)이다. 마음 밖에는 없다. 무법, 없을 무, 법 법. 법이라는 건 사물인데, 마음 밖에는 사물이 없다. 모든 사물이 오직 마음이다. 심외무법이니, 마음밖에 법이 없으니 일체의 유심이라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다. 그래서 마음 하나를 딱 챙겨서 마음속에 머물고 마음속에 자재하면 그것이 극락세계죠. 일심에 자재하면 극락세계다. 사물에 출몰하면 그것이 생사윤회다. 물건 따라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 그게 생사윤회고요. 일심 한마음에 자재하면 극락세계다. 이 도리가 극락 가는 도리거든요. 그러면은 이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어서 극락세계 항상 계시는 거 하고, 중생이 늘 죽고 사는 거 하고, 이게 전부 한마음에서 이루어지는데, 죽고 사는 마음에서 죽음이 없는 세계로 가는 게 극락왕생이거든요. 근데 죽고 사는 것도 마음이고, 극락세계도 마음이니까 마음에서 마음으로 가는 거예요, 이 극락왕생이라는 게. 무슨 차 타고 가는 것도 아니고 비행기 타고 가는 것도 아니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가는 게 극락왕생이다. 見聞覺知 受想行識 生老病死 憂悲苦惱견문각지 수상행식 생로병사 우비고뇌寂照圓明 靈明性覺 莊嚴淨土 極樂世界적조광명 영명성각 장엄정토 극락세계 一心迷惑 生老病死 一心智德 極樂世界 일심미혹 생로병사 일심지덕 극락세계一心迷惑 ①依根意識 : 觸境發識 了別境界일심미혹 ①의근의식 : 촉경발식 요별경계 ②獨頭意識 : 業識所現 無物見物 ②독두의식 : 업식소현 무물견물一心智德 ①般若智見 : 照見空相 智到彼岸일심지덕 ①반야지견 : 조견공상 지도피안 ②菩提智光 : 大寂光明 普照法界 ②반야지광 : 대적광명 조견법계菩提智光 : 寂照心 圓明心 普照心 靈明心반야지광 : 적조심 원명심 보광심 영명심 具足一切智 遍知一切法구족일체지 변지일체법一切國土中 一切無不現일체국토중 일체무불현(화엄경, 여래현상품) 그러면 이 마음이라는 게 견문각지(見聞覺知)하는 마음이 있어요. 견, 보는 마음, 문, 듣는 마음, 각, 느끼는 마음, 미각, 혀로 느끼고 몸으로 느끼고, 후각, 코로 느끼고, 안이비설신 이러거든요. 또 생각으로 느껴요. 이거를. 지각이라 그래요. 이것이 수상행식(受想行識)을 해요. 견문각지로 수상행식을 한다. 받을 수, 감수를 해요. 또 이걸 상상을 해요. 그게 상이에요. 행동을 해요. 인식을 해요. 이걸 중생심이라 그래요. 견문각지 수상행식이 일심을 미혹한 중생의 마음이다, 이렇게 가르쳐요. 그래서 마음은 중생심이 있다. 그 중생심 중에 이제 범부중생이죠. 범부심. 범부의 마음은 견문각지 수상행식,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감수하는 마음, 상상하는 마음, 행동하는 마음, 인식하는 마음, 이놈을 가지고 살아요. 그래서 뭘 느끼냐.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느껴요. 생로병사. 또 생로병사에는 우비고뇌(憂悲苦惱)가 있어요. 근심 우, 근심이 자꾸 생겨. 슬플 비, 슬픔이 생겨. 비애가 생겨. 고뇌, 괴로움이 생겨, 걱정이 생겨. 이게 범부의 마음인데 이걸 범부심이라고 하거든요. 이거를 어려운 말로 의식이라 그래요. 의식. 그 마음에는 이렇게 의식심이 있다. 그러면 이 의식심은 이 몸으로 느끼는 의식이 있어요. 이걸 의근의식(依根意識)이라고 그러는데, 의지할 의자, 뿌리 근자. 이 몸을 뿌리에다가 비교해서 눈으로 느끼는 안식. 근데 이게 보통 사람은 눈이 본다 그러면은 눈동자가 보는 줄 아는데 그게 아니에요. 눈동자는 뿌리일 뿐이고, 이건 뿌리와 같아. 이 여기에 이제 식이 나오는데, 안근이, 이 눈 뿌리가 촉경을 하면, 경계에 접촉을 하면 거기서 의식이 발동을 한다. 이걸 촉경발식(觸境發識)이라고 그러죠. 촉경발식. 이게 손은 이게 신근 뿌리인데, 이걸 경계라고 그래요. 경계 경자, 경계. 이 대면 이 몸이 이게 바로 느끼는 게 아니라 의식이 몸에 식이 발동을 해서 느끼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이 운명을 했을 때 눈동자는 그냥 있는데 보지 못하면 그건 식이 발동을 안 해서 그래요. 발식을 안 해서 그렇다. 그래서 귀도 마찬가지에요. 이근인데 듣는 뿌린데 이근이 촉경을 하면 소리와 접촉을 하면 발식을 해요. 촉경발식 코도 마찬가지고요. 코는 비근인데 비근이 냄새 같은 데 접촉을 하면 거기서 식이 발동을 해서 느끼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의식은 무슨 특징이 있느냐 하면 전부 경계만 쫓아가는 특징이 있어요. 경계만. 눈에 보이는 거 쫓아가고 귀에 들리는 거 쫓아가고 몸에 접촉되는 거 쫓아가고. 전부 경계만 쫓아가요. 이래서 이걸 이제 의근의식이라, 근에 의해서 이제 식을 발동시키는 의식이 있는데, 또 의식 중에는 독두 의식(獨頭意識)이라고 그래가지고, 홀로 독, 머리 두, 머리 두자는 어조사고 홀로 일어나는 의식이 있어요. 의근의식이라는 건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게 이제 근에 의지해서 느끼는 의식이고 안 보면 안 보여요. 근데 독도의식이라는 거는 이 안이비설신의 눈과 귀가 다 잠들어 있는데 홀로 꿈을 꿔요. 이거는 눈, 귀, 코, 입 상관없이 홀로 일어나는 의식이다. 이래가지고 독도 의식이라 그래요. 그러면 선정에 깊이 들면 눈으로 보고 귀로 안 들어도 많은 세계가 보이는데, 그런 것도 몸 상관없이 보는 거기 때문에 독도 의식이다. 근데 뭐든지 이 의식은 쫓아가는 의미가 있어요. 쫓아가. 보는 대로 쫓아가고 듣는 대로 쫓아가고 이게 범부의 마음이에요. 그러면 이 촉경발식을 하면, 이 경계에 접촉해서 식이 일어나면, 요별경계(了別境界)라 이 경계를 자세히 살피고 판단하고 취사하고 취하고 버리고 이 짓을 해요. 그게 범부의 범부심이에요. 그리고 독도 의식이라는 건 저 혼자 꿈꾸고 저 혼자 돌아다니는데, 그 녀석은 뭘 하는 녀석이냐 하면, 절대 혼자 다니는 게 아니라 평소에 몸에 익혔던 경험으로 그 의식이 일어나는 거예요. 평소 경험이 없으면 꿈을 못 꿔요. 이걸 평소 경험에 의해서 의식이 일어나는 거를 불교 용어로는 업식(業識)이라고 그래요. 업은 경험이고 의식이 일어나는 건 의식이란 말이지. 업식. 그래서 이 꿈꾸는 내용을 가만히 보면 다 들었던 거, 또 비슷한 거, 보았던 거, 비슷한 거 이런 게 꿈에 보여요. 그래서 그건 업식소현(業識所現)이라, 경험의 인식으로 나타나는 바다. 그래가지고 순전히 자기 경험, 자기 인식으로 무물견물(無物見物)이라, 물건이 없는데 물건을 봐요. 그게 꿈이에요. 꿈에서 본 물건은, 사물은 다 없는 거예요. 근데 자기 경험 자기 인식으로 보는 거예요. 무물견물이라. 어떤 사람이 꿈에 나를 꿈을 꿔서 내가 꿈에 스님하고 같이 있었다 그러는데, 나는 같이 안 있었거든요. 그 사람이 저 홀로 꾼 거예요. 그게 무물견물이야. 내 없는 데서 나를 봤거든. 이런 거를 꿈이라는 건 자기 경험의 인식으로 물건 없는 데서 물건을 보는 거다. 이렇게 인도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 중국의 장자라는 사람이 꿈에 나비가 됐는데 이걸 몰랐어요. 꿈에 본 나비와 내가 생시에 사는 나는 어떤 관계가 있나 몰랐던 거예요. 근데 이게 불교에서는 꿈에 나비가 됐다고 하는 것은 업식소현으로 평소 경험이 나타난 바로, 무물견물이라, 나비 없는 데서 나비 본 거거든요. 이 문화라는 게 이래요. 천하의 지식인이고 천하의 머리가 좋은 사람인데 꿈에 나비가 본 거를 해석을 못했어. 이상하다. 근데 불교에서는 업식소연이다. 업으로 나타난 바다, 무물견물이다. 물건 없는 데서 물건 보는 게 꿈이다. 이게 중생심이에요. 그다음에 이렇게 살아서 안 되겠다. 이거 깨달음을 얻어야 되겠다. 이게 보살인데, 보살은 지혜심을 가져요. 이런 의식심에서 벗어나서 그 지혜를 인도말로 반야라 그래요. 반야는 경계를 쫓아가는 게 아니고 경계를 바라보는 거예요. 산이 보이면 산을 딱 본다. 이거 조견(照見)이라고 그러는데, 바라볼 조자, 조명할 조자가 있거든요. 볼 견. 사람이 보이면 사람을 딱 본다. 하늘이 보이면 하늘을 딱 본다. 이렇게 보는 대로 쫓아가지 않고 바라보면 공상이라는 걸 봐요. 이게 조견공상(照見空相)이에요. 공상이라는 건 뭐냐. 형상이 나도 난 것이 아니고 형상이 사라져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 불생불멸을 공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반야로 보면 일체 사물이 불생불멸상이다 보는 거예요. 그러면 이 생로병사는 여기 이 세상인데, 불생불멸 세상은 저기 저 세상이에요. 그래서 지도피안(智到彼岸)이라, 그 불생불멸을 보는 지혜로 피안에 도달한다. 이게 보살 마음이에요. 보살 마음은 반야고 범부 마음은 의식이고. 그래서 의식의 마음에서 이제 반야의 마음으로 또 이제 보리의 마음으로 가는 게 극락세계예요. 수속 밟을 것도 없어요. 자리 옮길 것도 없고. 조견공상이라. 딱 생각을 움직이지 말고 바라보면 있는 게 그대로 없는 거와 똑같아요. 그걸 비유로 말하면 얼음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얼음은 없고 물이다. 그래서 얼음 속에서 물을 보는 거예요. 죽고 사는 데서 죽고 사는 게 없는 걸 보는 게 이게 반야다 말이죠. 그걸 보살이라 그래요. 그래서 마하반야 바라밀 이게 불교예요. 반야로 피안에 간다. 죽고 사는 곳에서 죽고 사는 곳이 없는 곳으로 간다. 도피안. 이게 전부 마음으로 되는 거예요, 이게요. 그다음에 삼세제불은 과거 현재 미래 모든 부처님들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인데, 큰 깨달음을 이제 이룬 분들인데, 이 생각이 완전한 지혜로 이루어지면 대적광명(大寂光明)이 되요. 자취는 하나도 없는데 항상 비춰. 이게 대적(大寂)이라 큰 대자, 고요할 적자. 이게 해도 자취가 있고 달도 자취가 있고 별도 자취가 있는데 이 보리 광명, 보리는 깨달음이거든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보리 광명은 대적광명이라. 자취가 어디도 없는데 광명이 비춰요. 마음도 찾아보면 없는데 희로애락을 느끼듯이, 자취는 하나도 없는데 늘 밝다. 대적광명. 보조법계(普照法界), 널리 법계를 비춘다. 이게 제불의 마음이에요. 모든 부처님 마음이에요. 범부의 마음은 경계를 쫓아가서 생사윤회하고, 보살의 마음은 형상에서 공상을 봐가지고 피안에 도달하고, 제불의 마음은 자취 없는 광명으로 온 법계를 다 비춘다. 이게 극락세계에요. 온 법계를 다 비추니까 극락세계. 그래서 이 깨달은 지혜 광명을 적조심(寂照心)이라고 그래요. 적조. 고요하게 비치는 마음이다. 이 적조심에 극락세계가 있어요. 극락세계가 있느냐 없느냐 이런 말을 하는데, 이거는 생각으로 골몰하면 극락세계 안 보이고, 고요한 마음으로 돌아가면 극락세계가 그대로 나타난다. 또 원명심(圓明心)이라 그래요. 둥글 원자, 밝은 명자, 둥글고 밝은 마음. 고요하게 비추는 마음. 둥글고 밝은 마음. 우리 생각이 그렇게 변하는 거예요. 또 보조심(普照心), 넓게 비추는 마음, 영명심(靈明心), 신령 영자, 밝을 명자, 신령스럽고 밝은 마음. 이 마음은 아주 신령스럽고 밝은 거예요. 사람은 60, 80이 됐는데, 2살, 3살 때 거 다 기억해요. 그러면 이 기억이 어디에 들어있느냐. 머리에 들어있느냐. 뱃속에 들어있느냐. 아무리 뱃속 갈라봐도 마음 안 보여요. 그런데 기억은 해요. 그래서 이걸 무표색이라 그래요. 표시 없는 빛깔이다. 그 마음을 무표색(無表色)이라, 마음 표시가 없어요. 근데 움직여. 그래서 그걸 무표색이다. 불교에서 그렇게 가르쳐요. 그래가지고 성불을 하게 되면 의식은 다 소멸되고 지혜가 원만해서, 보살은 피안도 보고 또 생사도 느끼는데 제불 부처님이 되면 생사 의식은 완전히 없어졌요. 그래서 그 생사 없는 광명만 널리 비춘다. 이래가지고 이걸 생사는 하나도 없고 생사 없는 광명만 완전한 걸 일체지(一切智)라고 하는데요. 일체지. 생사가 없고 생사가 없는 지혜, 또 광명이 항상 하고 광명을 비추는 지혜, 이런 지혜를 다 갖췄다고 일체지라고 그럽니다. 일체지, 생사 없는 지혜, 광명을 비추는 지혜, 이걸 구족해서 다 갖추어서 변지일체법(遍知一切法)하고, 일체법을 두루 알고 이거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 지혜를 얻으면 뭐를 보더라도 불생불멸이오. 일심상주라. 일심은 상주하고 만물은 나되 나는 것이 아니고 죽되 죽는 것이 아니다. 그거에요. 물속에 온갖 것이 비춘다 하더라도 물을 모를 때는 그 물속에 비추어진 그림자만 막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했는데, 물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면 물 속에 뭐가 비추어지고 보여도 물뿐이에요. 그림자는 없는 거예요. 그렇듯이 이 마음을 하나 밝히고 나면 세상 만물이 전부 마음뿐이에요. 세상 만물은 없는 거예요. 그걸 무상하다 그러고 비법이라고 법이 아니다. 무상비법인데 항상함도 없고 법도 아닌데 일심을 몰라서 무상한 거를 영원한 걸로 착각하고 쫓아가요. 법이 아닌데 법으로 알고 거기에 매달려. 그러다가 이제 죽을 때쯤 되면 허망하다는 걸 알고 내가 잘못 살았다 울어. 근데 거기서 멈추지 않아요. 또 다시 보이는 현상을 또 쫓아가. 이게 윤회거든요. 내세에는 뭐 좋은 집에 태어나고 싶다. 좋은 집에 태어나도 그것도 얼마 못 가. 내세에는 좋은 사람 만나고 싶다. 좋은 사람이 그게 몇 년 가나. 결혼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상대 편이 나의 이상형이다. 그 이상형 지금 모습이 10년도 안 가는데. 10년 후에는 어쩔 건데. 이 사람 아주 미치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 깨달음을 얻어서 마음에 자재해야 되는데, 만물에 매달려서 생사에 윤회한다. 이걸 지적하는 게 이제 부처님이거든요. 깨달음을 얻어서 만물에 자재하면 되는데, 자재라는 건 뭐냐. 물속에 뭐가 비치던 물은 그대로 물이에요. 사람이 비춰도 물이고 나무가 비춰도 물이고 산이 비춰도 물이고. 근데 물을 모를 때는 물속에 나무가 있고, 사람이 있고 산이 있는 줄로 알아요. 그래서 거기 쫓아가서 그거 건지려고 하다가 건지지 못하고 옷만 다 버리고 고생만 하고 나오는 거지. 이게 중생의 고통이라는 거지. 고통. 그래서 인생사는 물속에서 달 건지는 거다. 달이 보이니까 안 건질 수도 없고, 건지는 거예요. 건져도 건져도 안 건지니까 계속 건지는 거예요. 그러다 기운 떨어져서 이제 가는 거지. 그래서 이 세상에서 뭘 얻어도 오래 안 가요. 그러고 뭘 얻어도 이 코에 숨지는 걸 막을 수가 없어요. 책을 수백 권을 저술해도 코에 숨지는 거 그거 못 막아요. 다른 명예나 재산이나 이런 거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지식이 자기를 구제하지 못한다. 근데 그 한참 그 지식을 추구할 때는 몰라요. 논문 하나라도 더 써서 유명 교수가 되려고 그냥 밤낮없이 고생하거든요. 근데 자기 죽을 때 자기 논문을 보나. 왜냐하면 자기 논문이 그거 별수 없다는 걸 자기는 알거든. 자기도 구제하지 못할 지식을 쌓다가 죽고, 자기 코에 숨지는 거 어쩔 수 없는 거 그거 하다가 죽고 그게 인생이에요. 그걸 안 하면 갑자기 어떻게 해볼 방법도 없고, 근데 마음을 환히 점점 닦아보면 세상사도 어렵지 않게 되고, 마음 닦는 일도 어렵지 않게 될 때가 있는데 그걸 보살이라 그래요. 범부로 있을 땐 잘 안 돼요. 안 돼도 고생하면 돼요. 처음부터 보살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 부처님의 이 보리 광명의 지혜는 일체 국토 중에 일체의 온갖 국토 중에 일체무불현(一切國土中 一切無不現)이라 나타나지 않는 데가 없다. 이게 화엄경 말씀인데 이게 이제 여래의 지혜광명이거든요. 여래의 지혜 광명은 이건 이제 마음은 항상 하고 생사는 본래 없다. 머무는 곳이 다 극락세계다. 그래서 이제 제사 지낼 때 염념보리심(念念菩提心) 처처안락국(處處安樂國), 생각생각이 부처님 깨달은 마음이면, 곳곳이 편안하고 즐거운 극락세계다. 그렇게 제사를 지내요. 염념보리심 처처안락국. 그러니까 오늘 영가께서 이런 세계로 잘, 한 생각 돌이켜서 바로 가시라. 기차표 예약할 것도 없고, 뭐 비행기표 알아볼 것도 없고, 앉은 자리 방석에서 떠날 것도 없고, 바로 가시라, 이런 말씀이거든요. 지심제청 지심제수法性圓融 常住法界 莊嚴淨土 極樂世界 법성원융 상주법계 장엄정토 극락세계에一念往生 一念往生 無盡受樂 無盡受樂일념왕생하시고 일념왕생하시여 무진수락하고 무진수락하십시오나무아미타불 얼음을 이제 큰 덩어리 얼음, 작은 덩어리 얼음, 뭐 여러 가지 조각된 얼음을 녹이면 똑같은 물이에요. 그래서 얼음 모양은 다 다른데 물은 똑같다. 이걸 원융이라 그래. 원융 막힘없이 융통한다 이거거든요. 이게 상주법계에요. 법성원융은 상주법계라(法性圓融 常住法界). 항상 머무는 세계다. 근데 장엄정토(莊嚴淨土)예요. 여러 가지로 이제 만들어 놨는데 그게 청정심으로 보면 전부 다 깨끗하고 한마음이 청정하니까 온 사물 세계가 다 더러움이 없더라. 그래서 이게 이제 오늘날도 큰 정신 건강의 문제인데, 자기가 생각하고 자기가 원망하고 자기가 무서워하는 건 전부 그게 자기 노이로제, 자기 스트레스예요. 자기 생각은 다 자기 노이로제다. 노이로제라는 건 쉽게 말하면, 가진 걸 모르는 게 노이로제다. 내가 많이 가지고 있는데 자기 가지고 있는 걸 하나도 몰라. 그리고 안 가진 것만 더 가지려고 그래요. 그게 스트레스거든요. 그게 전부 자기 문제예요. 원망하는 것도 내 문제고, 두려워하는 것도 내 문제고, 근심 걱정하는 게 전부 내 문제예요. 자기 한마음이 깨끗해지면 바로 극락세계인데, 그가 아주 자기 마음을 깨끗이 할 생각은 안 하고, 맨날 돌아가신 부모 원망하고, 또 몇 대 위에 조상도 원망하는 사람이 있어요. 친구 원망하고 세상 원망하고, 세상원망하고, 몇천 년 전에 돌아가신, 몇백 년 전에 돌아가신 조상을 내가 바꿀 수가 있나. 상대편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나. 내가 바뀌면 하늘도 바뀌고 땅도 바뀌고 사람도 바뀌는데, 나는 안 바꾸고 밖을 원망하니까 그걸 생사윤회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건 전부 내 문제다. 나의 노이로제요, 나의 스트레스요. 자기 걱정이다. 그것이 다 사라지면 법성원융 상주법계다. 근데 이게 장엄정토다. 하나하나 이렇게 돼 있는 게 다 공덕으로 이루어진 청정국토지, 거기서 뭐 나쁘다고 뺄 거 하나도 없고, 좋다고 취할 거 하나도 없고 그대로 정토다. 그게 극락세계란 말이에요. 장엄정토 극락세계. 그러니까 오늘 영가께서는 한 생각으로 두 생각 갖지 말고 사바세계에 더 머물 생각을 하면 극락 못 가거든. 사바세계는 생사가 있는 세계고, 극락세계는 생사가 없는 세계인데, 생사가 있는 이 사바세계에 좀 머물고 싶다. 자식 생각도 나고, 사업 생각도 나고. 지금 있는 자식이 오래 가나, 100년 후에는 하나도 없을 텐데. 지금 있는 사업이 오래 가나, 얼마 지나면 다 없어져요. 근데 그게 마음에서 안 지워진단 말이에요. 그거를 번뇌라고 그래요. 알기는 아는데 떠날 수는 없어. 그러니까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깨끗이 하다 보면 나중에는 저절로 된단 말이죠. 그래서 이 장엄정토 극락세계에 두 생각 갖지 말고 한 생각으로 가시고 한 생각으로 가셔서 가는 걸 왕생이라 그런다고요. 왕생. 갈 왕자, 날 생자. 무진수락(無盡受樂)하시고. 거기 가서 끝없이 즐거움을 받으시고, 끝없이 즐거움을 받으십시오. 오늘 법문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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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식] 1월1일 시무식 법문
주지 법해스님 2024-01-01
새해가 밝았습니다. 작년에 보고, 올해 처음 보네요. 여러분들 올 한 해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또 건강하시고,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달렸는데, 좋은 마음 먹고, 좋은 일이 많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올해는 갑진년(甲辰年)이에요. 갑진이라는 것은 <푸른 청룡>이다 이래서, 우리가 옛날에 민간에도 경인 백호((庚寅 白虎)는 재앙을 막고, 갑진 청룡은 복을 불러온다고 하는 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복업을 많이 짓게 되는 것은, -일단 복을 받고 싶죠, 그죠, 다들?- 복을 받으려면 먼저 있는 복을 아껴야 된다. 늘 제가 말씀드리는 것처럼, 있는 복이 있다고 너무 허영을 부리고 그냥 사치나 하고 갑질이나 하고 이렇게 하면은, 그거는 복을 받는 일이 아니라 죄를 받는 일이고, 본인 스스로도 죄를 짓는 일이고, 남이 또 그걸 보고 어떻게 해요? 흉을 보잖아요. 남도 죄를 짓게 하고. 이거는 죄업이에요. 첫 번째는 있는 복을 아끼고, 두 번째는 복을 짓는 일을 자꾸 하는데, 복 지을 때는 내 마음이 기뻐요. 뭐를 해도 그 갸륵한 자비의 마음이 나오기 때문에 마음이 기쁘다는 거. 그렇게 해서 뭐든지 열심히 하면은 그게 다 복이 돼요, 자신에게도 복이 되고, 여러분들께도 복이 되고, 또 진관사 사중에 복이 되고, 사중에 복이 되다 보니까 어떻게 돼요? 진관사를 찾아오는, 모든 종교를 넘어 모든 분들이 행복한 마음을 담아가게 되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복을 짓고 그러면 자연 절로 절로 모든 것이 이루어져서 복 받을 일만 생기는 거예요. 그리고 본인이 행복해지게 돼요. 그렇게 된다라는 거를 꼭 여러분들이 기억하시고요. 우리가 이제 오늘 1월 1일부터 내가 먹는 마음을 여러분들이 계속 살피는 거에요. ‘나 한 사람이 참 복된 사람이구나. 나 한 사람이 진관사를 참 이익되게 하는구나. 나 한 사람이 진관사에 오는 사람들을 다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나는 대단한 사람이구나. 나 한 사람이 스님들, 동료들에게 다 말 한마디라도 잘해드려야 되겠다.’ 이런 마음을 매일 잊어버리지 말고, 그 마음을 여러분들이 마음에 새기신다면, 진관사에 그 생활했던 그 시간을 떠올렸을 때, 또 도반들이, 스님들이, 여러 누구누구가, 예를 들자면 법해스님, “스님이 주지스님이셨을 때 가장 신바람 났어요. 행복했어요.” 이렇게 하면 제가 어떡하겠어요? 그 무섭고 두려운 고통스러운 거를 생각하겠어요? 그때 주지 살 때 신바람 나게 했던 걸 기억하겠어요? “그때 그랬지. 그때 참 시간을 쪼개가면서, 열심히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더 부처님 길로 이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하게 할까, 어떻게 하면 복을 더 받게 할까,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의 괴로운 마음을 내려놓게 할까,” 이런 생각을 하겠지요. 이 생각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실 갑진년은 복을 많이 짓자, 첫 번째 주지 스님부터 <복을 많이 지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복을 많이 짓고, 우리 스님들도 무조건 복을 많이 짓도록, 그렇게 하도록 같이 함께 늘 대중공사하고, 또 같이 의논하고, 같이 함께 기도하고, 정진해요. 또 우리 직원 여러분들도 스님들 준한 수준으로, 그게 뭐냐 하면은, 등급이 높아지는 거예요. 진관사 직원, 국장님을 비롯해서 인품을 충분히 갖추셨어요. 다들. 오히려 어떤 때는 스님들보다 훨씬 더 훌륭해요. 그래서 주지스님 분신이 되어서 다 주지스님으로, 법해 스님 1, 2, 3, 4, 다 되도록, 법해 스님 1, 2, 3, 4. 우리 식구 모두하면 법해 스님이 지금 50 몇 명이 되잖아요. 그죠? 그래서 다 갑진년 한 해 열심히 신바람 나게 하는데, 이게 몸이 아픈 거는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자기 몸을 잘 조율하고, 마음을 잘 다잡아 가지고 그렇게 해서 복된 일을 하자. 갑진년 해도 복이 오는 해고. 그러니까 그렇게 해 나가시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 많이 웃자. 웃으면 복이 오죠. 여러분들 복 받고 싶죠. 그러니까 웃을 일을 많이 만들자. 웃을 일을 많이 만들고 많이 웃자. 또 웃게 해줘서 무슨 마음이 생겨요?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잖아요. 그죠? 감사한 마음을 가지자.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은, 지금 이순간, 오유지족(吾唯知足)이 돼야 해요. 내가 오직 만족할 줄 아는 거에요. 1일이 되어 지금 8시가 됐는데, 그 8시간밖에 안 됐는데도 저부터도 잘 안 됐어요. 돌아와가지고 마음속에 나쁜 마음이 막 일어나는 거예요. 잠깐이었는데. 그래서 제가 또다시 마음을 돌렸어요. ‘야, 아직 멀었다, 멀었구나.’ 이런 생각, 또 경계가 또 와요. 한 고개 넘었는데 두 고개가 또 오는 거야. 또 와가지고 제 마음이 북받쳐 올라오는 거예요. 그래서 ‘아직 멀었구나’ 했는데, 부처님 앞에 제가 딱 서는 순간, “부처님 제가 참회합니다. 부처님을 뵈니까 아까 마음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여러분들도 주지 스님도 그러는데, 주지스님보다 우리 진관사 스님들이랑 신도님은 더 훌륭하셔요. 더 훌륭해야 또 마땅하고. 그런데 저처럼 그런 마음이 일어날 때는 마음을 빨리 되돌리고, 안 될 때는 부처님 앞에 서 보세요. 서면 부처님하고 한마음이 되는 순간, 아까 좀 전에 있었던 마음은 부끄러운 마음으로 본인을 참회하게 됩니다. 그래서 만족할 줄 알고 정직하게 살자. 올해는 정직한 순간 복이 와요. 남은 속여도 나는 속일 수 없다라는 거. 그러면 부끄럽지 않다는 거. 그렇게 되면 공덕이 쌓인다라는 거를 여러분들이 꼭 명심하고요. 올해는 사찰음식 해로, 일단 밥 잘 먹자. 밥을 잘 먹어야지, 건강하고 또 건강. 그리고 두 번째 마음 잘 쓰자. 그것만 명심해서 마음도 잘 쓰고 밥도 맛있게 먹고 그러다 보면은 어떻게 부처님 마음이, 보리심이 증장이 되어 가지고, 그냥 모든 일이 절로 절로 저절로 될 겁니다. 그렇게 하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다 건강하시고 또 신바람 나고. 또 스님들은 원래는 정진의 해로, 사찰 음식을 하지만, 각자 자기 정진에 힘이 없으면 시간만 낭비하고 너무나 억울해요. 그래서 정진하는 그런 해가 되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마음의 정원 진관사를 한번 외쳐볼까요? 마음의 정원 진관사.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절로 절로 저절로. 부처님 법을 전합시다. 네. 오늘 이 네 마디가 여러분들을 아주 복되게 하실 겁니다.마음의 정원 진관사에서 모든 사람을 당신은 부처님처럼 보고, 또 그렇게 부처님처럼 보는 순간 모든 일이 절로 절로 저절로 이루어지고, 그 절로 절로 저절로 이루어진 그 마음을 널리 회향하기 위해서 부처님 법을 전한다면 진관사가 복된 도량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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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기도]12월 22일 동지기도 회향 법문
회주 계호스님 2023-12-22
안녕하세요. 동짓날이 이렇게 추운 거 보니까 작년에 입춘날 입춘부를 갖다가 거꾸로 붙이셨죠? 거꾸로 안 붙였으면 이렇게 추운 날이 있을 수 없는데. 옛날에는 아주 더울 때를 오뉴월이라 그러죠. 아주 추울 때는 동지섣달 그러잖아요. 동지섣달. 지금은 동짓달이죠. 24절기는 입춘, 우수, 경칩, 춘분, 한식, 곡우,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입니다. 그럼 첫 절기가 뭐예요? 입춘이죠. 마지막은 (동지... 아이고 관세음보살) 대한입니다. 소한, 대한 아직 안 왔잖아요. 절기는 한 달에 두 번이에요. 그래가지고 12 곱하기 2 하니까 24절기에요. 24절기 가운데 동지는 22번째예요. 그래서 24절기 중 가장 큰 명절이 동짓날이에요. 아시겠죠? 동지 잘못 알면 안 돼요. 동지가 마지막이 아니에요. 소한, 대한이에요. 그렇게 아셔야지, 또 잘못 아시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설을 4번 쇤다 그랬죠. 동지, 양력, 음력, 그다음에 입춘 그래요. 그럼 동지는 음양의 새해라고 해서 하지부터 동지가 음기에요. 그다음에 동지부터 서서히 밝은 기운이 나오니까, 하지까지가 양기예요. 그래서 동지 지나면 노루 꼬리만큼 길어진다 그러죠. 밤이 제일 긴 날이 언제예요? 동짓날이에요. 낮이 제일 짧고. 옛날에는 긴긴밤에 뭐 하냐 그러지만, 젊은 사람은 밤도 길지 않은 것 같아요. 연세가 많으면 잠이 안 온다는데, 잠도 잘 자는 노인네도 계셔요. 그러니까 동지에 제일 긴데, ‘이거 뭐 하나’ 하지만은 사실은 동지도 짧다 생각하면 짧고, 낮이 제일 짧은 날이 오늘이에요. 그래서 내일부터는 조금 1분, 1분씩 길어져요. 그래서 양기라 그래요. 그럼 두 번째 양력설은 1월 1일이에요. 음력설은 음력 1월 초하루죠. 정월 초하루가 음력 설이에요. 마지막에 입춘이 지나야지, 다음 해라고 그래요. 그래서 우리는 네 번의 설을 쇠는데, 오늘은 작은 설이라기도 해요. 아세(亞歲)라 그래가지고, 이게 팥죽을 한 그릇 먹어야지 나이가 한 살 더 든다 그랬어요, 옛날에는. 그래서 노인네고 젊은이고 나이 수대로 팥죽 옹심이를 먹는다는데, 그럼 90세면 90알 먹어야 되는데, 그래서 제가 그러잖아요, 10세를 한 알로 하자. 그런데 노인네는 90세니까 또 9알 먹다가 돌아가면 큰일 나니까 20세에 한 알, 다섯 알만 잡수셔도 돼요. 그래도 괜찮으니까, 오늘 동지 팥죽 잘 드시고.... 우리가 동지를 이렇게 하는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나눔의 행사예요. 나누며 베풀며 실천하는 날이 동짓날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비우면 편안하고, 내려놓으면 가뿐하고, 나누면 행복하고, 고요하면 즐겁다. 너무 많이 가지려고 하니까 무거운 거예요. 그러니까 그걸 다 내려놔야 되는데 못 내려놓으니까 항상 괴롭고, 항상 남하고 비교하니까 ‘나는 왜 이렇게 못 가지나’ 하고 괴로워하잖아요. 비교하는 고도 팔고(八苦) 가운데 하나가 비교 고예요. 그래서 구고에요. 생로병사 4고는 기본입니다. 팥죽나누며 이웃 위한 나눔 실천하는 날 "동지는 명일이라 일양이 생하도다.시식으로 팥죽 쑤어 이웃과 즐기리라.새 책력 반포하니 절후는 어떠한고.해 짧아 덧이 없고 밤 길어 지루하다."- <농가월령가> - 팥죽 나누며 이웃 위한 실천하는 날이라 그랬죠, 나누면서. 동지는 명일이라 일양이 생하도다. 동지는 오늘인데, 오늘부터 이제 햇볕이 이렇게 차곡차곡 양기가 들어온다는 얘기예요. 시식으로 팥죽 쑤어가지고 이웃과 즐기리라. 그래가지고 새 책력 반포하니, 우리는 새 달력 받는 날이죠. ‘동지가 되면 달력 받는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절후는 어떠한고, 절후는 쌀쌀하고 이제 22번째예요, 절후는. 해 짧아 덧이 없고 밤 길어 지루하다. 하지만 젊은이는 지루한 거 하나도 없어요. 밤이 긴 건 하나도 없는데, 사람들이 지루하다고 하는 건 농가월령가의 한 부분이에요. 농가월령가 보면 2월달에 대한 얘기, 3월달 쭉 월령가가 있어요. 근데 동지는 명일이라 일양이 생하도다. 동지에 대한 월령가를 이제 했고. 팥죽(豆粥) 復月霜雪至(복월상설지) 동짓달에 서리 눈이 내리니 田家寒事畢(전가한사필) 농가에는 월동준비를 마쳤다.瓦釜明豆粥(와부명두죽) 오지솥에는 팥죽 끓는 소리食之甘如蜜(식지감여밀) 먹으니 그 맛이 꿀처럼 달구나 李應禧(이응희“옥담유고”에서) 팥죽을 두죽(豆粥)이라 그래요. 그래서 우리 수륙재 지낼 때 두죽 몇 탕기 올린다는 말 들어보셨죠? 거기 보면은 두죽이 10그릇, 두죽이 다섯 그릇 그러는데, 두죽은 팥죽을 얘기해요. 그 두죽에 대한 내용의 시가 하나 있는데, 이응희라는 분이 쓴 옥담유고에 나오는 얘기에요. 復月霜雪至(복월상설지) 田家寒事畢(전가한사필) 瓦釜明豆粥(와부명두죽) 食之甘如蜜(식지감여밀) 동짓달에 서리 눈이 내리니, 어제그저께 눈 내렸죠. 바깥에 눈이 조금 쌓였어요. 또 농가에는 월동준비를 다 마쳤다. 월동준비 마치는 건 김장하고, 시골 같은 데면은 장작 패다가 겨울에 장작을 땔 수 있도록 나뭇짐을 해놓는 게 월동준비예요. 옛날에는 연탄도 꽉 채워놓고 등등했는데. 이제 절집에서 월동준비는 다른 게 아니고 김장하지요. 속가 집에도 마찬가지예요. 그게 월동준비예요. 오지솥에는 팥죽 끓는 소리, 먹으니 그 맛이 뭐처럼 달구나, 꿀맛처럼. 달달한 꿀이라고 표현한 거예요. 좀 달다, 맛있다 할 때 ‘꿀처럼 맛있다’ 이런 말을 많이 사용해요. 하나의 그거는 뭐라 그러나, 그거를 대신해서 하는 말, 비유, 이제 그렇게 얘기해요.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베풀면서 내려놓고 살면 좋아요. 그래서 이 복 짓는 달이 동짓달이에요. 공덕 짓는 달도 동짓달이고. 동짓날 그래서 팥 공양하신 분들 많으시죠. 특히 삼재 지난 분들 팥 많이 올리라 그러죠. 팥을 뿌려가지고 액땜을 하고, 벽사(辟邪)와 축귀(逐鬼)의 뜻이에요. 귀신 쫓는 거. 여기 나와요. <동지의 유래> 그래서 중국 주(周)나라에서 동지를 설로 삼은 것도 이날을 생명력과 광명의 부활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며, 역경의 복괘(復卦)를 11월, 즉 자월(子月)이라 해서 동짓달부터 시작한 것도 동지와 부활이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어두운 기운에서 밝은 기운, 따뜻한 기운이 점점점점 생긴다 이 얘기예요. 그래서 동지를 양시생지일(陽始生之日)이라 그랬죠. 양의 기운이 비로소 시작되는 날이고, 다음 해가 시작되는 날이라고 하여서, 12월달은 1월을 준비하는 달이라 그랬죠. 12월 해서 마지막은 아니에요. 보통 겨울이 있다고 해가지고 봄에 꽃이 안 피는 건 아니잖아요. 봄에 싹이 트듯이 머물렀다, 생로병사가 계속 윤회하듯이, 춘하추동도 다 이렇게 머무는 거예요. 그래서 춘생하장(春生夏長) 추수동장(秋收冬藏)이에요. 봄에는 씨 뿌려서 싹이 나오고, 여름에는 그게 점점점점 자라고, 가을에는 추수하고 겨울에는 이거를 딱 저장해 놓는다. 이것도 하나의 저장의 의미예요. 그래서 작은 설이라 그래요. 그래서 우리가 동짓날 팥죽 먹는 유래가 있어요.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보면은요. 공공씨(共工氏), 성이 공공씨예요. 그 공공씨 아들이 재주가 별로 없었어요. 멍청이같이 멍하고, 이게 말하면 천치 비슷하게 그런. 콩과 보리를 못 가리면 뭐라 그랬죠? 숙맥(菽麥)이라 그랬잖아. 숙맥. 누가 숙맥 대답했어요? 잘했네. 숙맥이라 그래요. 그 바보 같은 아들이 언제 죽었어요? 동짓날에 죽어가지고, 역질(疫疾)귀신하면 전염병을 옮기는 귀신이에요. 요새 말하는 코로나 옮기듯이 이 아들이 공부만 못하면 되는데 죽어서도 또 전염병 올리는, 돌림병 올리는 귀신이 됐어요. 그래가지고 귀신이 됐는데 그 아들이 생전에 뭐를 두려워했어요? 팥을 두려워해가지고, 팥죽을 쑤어서 물리친 것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우리 진관사 대중 스님들이 팥을 다 주위에다 이렇게 뿌렸고, 또 마을에서는 팥을 방에다가 올려놓기도 하고, 장독간 같은 데다가 팥죽 한 그릇 올려가지고 조상들한테 제사도 지내고 기도도 올리고, ‘1년 내내 무탈하고 무병장수하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많이 해요. 그래서 아까 축귀와 벽사의 의미가 있다 그랬죠, 팥은. 그래서 우리가 뭐 시작할 때 팥 뿌리죠. 팥 뿌리고 막걸리 뿌리고 또 뭐예요? 소금 뿌리죠. 제일 처음에 팥부터 뿌려요. 나쁜 액매기하고, 그다음에 소주 먹으면 좀 어질어질하니까 이 귀신이 동하지 못하게 하려고 이렇게 막걸리를 뿌려요. 막걸리를 귀신이 왜 좋아하나? 먹고는 취해서 제대로 분간 못 하게. 좀 이렇게 돌아다녀서 이렇게 해코지하지 말라고 그런 거예요. 소금은, 우리가 왜 나쁜 사람이 오면 소금 확 뿌리잖아요. 그것도 액땜하기 위해서 소금 뿌리는 거예요. 또 왜 집 안에 어떤 사람이 왔다가 좀 재수 없으면 ‘야 소금 가져와서 얼른 그 사람 나갔으니 빨리 뿌려라’ 이런 말 들어보셨죠? 똑같아요. 이것도. 그래 이제 소금 뿌리고 그러는데. 우리 한국의 동지 풍속은 신라시대 때 선덕여왕이 있었죠. 이 선덕여왕이 황룡사에서 예불을 드리고 있는데, 지귀라는 사람이 굉장히 선덕여왕을 혼자서 흠모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누구를 통해가지고 여왕님을 좀 뵙고 싶다고 얘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황룡사 구층탑에서 내가 예불을 할 때까지 기다리라 했는데, 그 기다리는 걸 못 참고 어떻게 됐어요? 죽었죠. 그래서 뭐가 됐어요? 남의 집과 재산을 불태우는 악귀가 되었어요. 아까 공공씨의 아들은 공부도 못하는 데다가 전염병 돌리는 역귀가 됐고, 또 이 사람은, 지귀는 집을 태우고, 또 뭐예요? 재산을 태우는 악귀. 귀신들은 못된 짓만 하는가 봐요. 귀신도 악귀가 있고 우리 신령님들은 다 선신이잖아요. 선신이 우리를 도와야지만이 우리가 하는 일에 장애가 없는 거예요. 선신이 안 도와주면요. 잘 안 돼요. 그래서 화장실 가서 꼭 손 씻으라는 얘기인데, 손을 안 씻으면은 화장실에 측신이 그 사람 냄새 나서 가까이 못 가, 자꾸 멀리 하다 보니까 나를 안 도와줘요. 헛디뎌가지고 엎어지잖아요. 그 화장실에서 엎어지면은 떡을 해놔도 잘 안 된다잖아, 어렵다 하잖아요. 목욕탕하고 화장실 갈 때 제일 주의해야 돼요. 노인네들은. 그래서 옛날에는 목욕탕에서 쓰러지면 약도 없다 그런 말도 있고, 속담에, 화장실에서 가면은 그 사람을 시루떡을 해가지고 아무리 해도 잘 안 낫는다 그래요. 그래서 명이 짧아진다는 말도 있어요. 그러니까 조심하는데, 악귀가 되니까 사람들이 팥죽을 쒀가지고 악귀를 물리쳐야 되겠죠. 팥도 뿌리고 악귀를 쫓는다는 이런 의미예요. 그래서 아까 팥죽의 축귀(逐鬼)라는 말이 있었죠. 그 팥의 붉은색이 이제 귀신을 쫓는 것과 삿된 것을 막는다. 벽자는 막을 벽자예요. 피할 벽자에요. 그래서 귀신과 삿된 기운을 물리치고 그런 데서 비롯했는데, 우리 조상들은 동짓날이 되면은 팥죽을 쒀가지고 온 도량에다 조금씩 팥물을 뿌려요. 근데요, 팥물도 땅에다 뿌려야지, 시멘트 위에다 뿌리면 지워지지도 않아요. 뿌릴 때 좀 지혜롭게 뿌려야 돼, 아셨죠? 오늘 잘 뿌렸나 몰라. 언제는 나무에다 뿌려서 아무리 쓸어도 안 되더라고. 그러니까 흙에다 뿌리면은 흙만 이렇게 뒤집으면 가려지잖아요. 그러니까 잘 뿌려야 돼요. 그래서 이렇게 올려놓는 팥죽은 우리가 갖다 놓고 버리지 말고, 또 다시 집안 식구들이 액땜하려면 그거 먹고 액땜하자. 보살님들이 동짓날에는 팥죽을 두 그릇, 세 그릇 가져가려하잖아요. 왜냐하면은 식구들한테 이렇게 액땜하려는 사람들 좀 먹고, 시험 치는 애들 좀 먹고, 좀 잘 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비는 형식이에요. 그래 그것도 하나의 우리들의 기복 신앙도 되지만은, 이 사실은 팥죽 쑤어가지고 화를 갖다 물리치고 복을 부르는 것도 이고득락의 의미예요. 고를 여의고 득락하는 게 우리 마지막에 자리이타행이잖아요. 그래서 고를 없애고, 락을 얻어가지고, 좋은 길로 가듯이, 이 원화소복(遠禍召福)도, 이 팥죽을 쑤어가지고 ‘액란을 물리치고 집 안에 좋은 일만 있게 해 주십시오’ 하는 것도 원화소복의 일이에요. 그러니까 원화소복을 잘하려면은 불설소재길상다라니 있죠. 그거를 하루에 7편씩 치세요. 예전에 종진 큰스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꼭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7번 하고, 불설소재길상다라니를 7번 하고 차(車)를 타면은 장애가 없고 차 사고도 안 나니까, 한 발 들여놓으면서 꼭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보살님들도 노는 입에 뭐 해요? 염불이죠. 괜히 쓸데없는 남의 입담 이렇게 구업 짓지 마시고, 열심히 기도하면은 모든 게 다 잘 돼요. 안 해서 그렇지 하면은 잘 되는 거예요. 그래서 불설소재길상다라니 한번 외워봅시다. 나모 사만다 못다남 아바라지 하다사 사다남 다냐타 옴 카 카 카혜 카혜 훔 훔 아바라 아바라 바라 아바라 바라 아바라 지따지따 지리지리 빠다빠다 선지가 시리예 사바하(3번) 소재 길상은요. 재앙은 없어지고 좋은 길상, 좋은 일만 있어주십시오 하는 그런 다라니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염불을 안 할 수 없죠. 주력이에요. 이거는 다른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잘 외워가지고 우리가 이제 집 안에 다른 액란은 없어야 되잖아요. 그래야지 보살님 늘 살기가 편안하잖아요. <동짓날 팥죽이야기(禪의 세계를 알리기 위한 설화)> 동짓날 팥죽 이야기가 또 있어요. 중국 이거는 설화에 나오는 얘기예요. 우리나라 오대산이 있죠. 중국에도 오대산이 있어요. 그래서 오대산 하면은 무슨 성지 같아요? 문수도량이에요. 그래서 중국 무착선사가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정진하였으나, 마음에 집착함이 많아가지고 문수보살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였음을 한탄하였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이름도 왜 무착이라 지었냐면 하도 집착함이 많으니까 무착, 집착하지 말라고 무착이라고 이름 지은 것 같아요. 여기서도 정진을 했는데 마음에 집착이 생기니까 보이는 게 없었어요. 옛날에는 어르신 스님네들이 이렇게 정진을 하다 보면은 누가 나타난다고 하는데, 여기서도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싶었는데 마음에 집착함이 생기니까 못 봤어요. 그냥 지나쳤죠. 그래서 자기가 너무 내가 수행력이 없구나 하고 앙산스님한테 가가지고 다시 이제 정진을 열심히 해서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러니까 동짓날 무착선사가 팥죽을 쑤고 있는데 홀연히 가마솥 그 팥죽 위에서 누가 나타났어요? 문수보살. 자기가 이제 문수보살보다 더 능가한 거예요. 누가. 무착선사가. 처음에는 공부가 덜 돼가지고 집착이 많다 보니까 문수보살이 나타나도 알아보지 못했는데, 나중에 팥죽을 이렇게 쑤다 보니, 깨달은 후에 팥죽을 이렇게 젓다 보니까 팥죽 위에서 문수가 자꾸 알찐알찐거려요. 그러니까 깜짝 놀래가지고 문수보살을 어떻게 했어요? 후려갈겼죠. 그냥 가만히 비키라 비키라도 아니고, 주걱 가지고 문수보살을 갈기니까, 문수보살이 깜짝 놀라서 “이보게 나 문수네, 문수네” 하니까 “문수는 문수고, 무착은 무착일 뿐이다.” 깨달음의 경지에 이제 이렇게 이르는 거예요. 깨닫지 못할 때는 문수보살을 못 봤는데 딱 자기가 깨닫고 나서 문수보살이 나타나니까 ‘문수보살을 내가 괜히 찾았구나. 내 스스로 문수고, 내 스스로 무착인데, 무착이 어디 있고, 문수가 어디 있냐.’ 이제 이게 선학적인 설화예요. 보통 사람들이 이런 얘기 하면 안 돼요. 주걱 가지고 쑤다가 문수가 뭐고 누가 뭐고 이런 건 안 되고. 왜 살불살조(殺佛殺祖)란 말 있죠. 선어록에. 부처도 죽이고, 누구도 죽이고 조사도 죽이고 한다니까, 진짜 모르는 사람들은 스님네들이 진짜 죽이는가 보다 이러는데, 그건 아니에요. 그거는 선어록에 나오는 하나의 선구예요. 여기서도 집착이 많았을 때는 문수를 못 알아봤는데, 자기가 깨닫고 나니까 문수고 무착이고 다 필요 없다 이거예요. 이게 득도한 내용이에요. 이건 이제 설화를 가져다가 이제 알리기 위해서 이렇게 한 거에요. 옛날에는요, 팥죽을 많이 쒔는데, 스님네들이 자랑하기 위해서 가마솥에 팥죽을 쑤는데 자기네들 배를 타고 가서 저었다 그래요. 서로서로 누가 더 많이 쒔다고 자랑하니까, 어떤 스님네들은 우리는 팥죽을 스무 가마 쒔다, 삼십가마 쒔다, 무슨 말을 하냐고, 우리는 큰 가마솥에다 얼마나 가마솥이 큰지 저을 수가 없어서 배를 타고 저었다. 그런 우스갯소리가 있어요. 스님네들이 농담 삼아 이제 절 집에서 그런 말을 가끔씩 해요. 동짓날에 얼마나 팥죽을 많이 쒔나 이제 그런 얘기에서 나오는 얘기인데, 또 팥죽 쑬 때 아까 옹심이 얘기했죠. 나이만큼 먹는 습관도 있고, 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가 이제 한 살을 더 먹게 되는 속설 같은 것도 있는데 동짓달을 시작으로 해서 나이가 한 살 더 먹는다 그래요. 그래서 작은 설이라 그랬죠. 그런 이제 얘기가 있어요. 그래서 동짓날에도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랬죠. 보통 그런데 이번에는 애매하게 10일이에요. 10일이면은 중간도 아니고 초도 아니고, 그러니까 10대, 10살도 그렇고 30전까지는 주의하셔야 돼요. 그러니까 애동지잖아요. 열흘이니까. 중순에 들면 중동지예요. 보름에 들면 중간 동지라 그러고, 또 이제 그믐께 들면은 뭔 동지라고 그래요? 노동지라고 하는데 우리가 보통 애동지, 노동지 이거는 상관없잖아. 보살님들은 절에 와서 가져가니까, 애동지가 들었든 무슨 동지가 들었든 집에서 안 쑤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집에서 안 쑤고 절에서 안 가져오면, 사 먹는다 하더라고.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그럼 절에서 못 먹으면 시장에서 사 먹으면 되지요. 동지에는 팥죽 먹는다는 의미가 중요하니까 무슨 죽이면 어떻겠냐고 드시라고 그런 말을 가끔 하는데, 오늘은 여러분들이 진관사 오셔서, 팥죽 오늘 다 가져가실 거죠? 드시고 가져가고 그래도 돼요. 그래서 오늘 넉넉히 쒔으니까 제가 그랬잖아요, 동지는 이웃과 더불어 나누고 베푸는 그런 달이니까, 저희들도 이제 한 3일 전부터 많이 나눔의 행사를 했어요. 저기 구청이라든지 어린이집이라든지 노인 복지관 같은 데도 돌리고, 신도님들도 연세가 많으셔서 절에 못 오시는 분들도 돌리고 그랬어요. 오늘 여러분들은 젊었고 노보살님이래도 가져가셔서 또 드시면 더 좋아요. 가져가 드세요. 그래서 불가에서는 동지에 팥죽을 올리는 의미는 부처님의 가피로 악귀를 몰아내는 원화소복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랬죠. 그래서 소재길상다라니를 해가지고 악을 물리치고 길상한 것을 얻고 또 복을 부르고 그래서 이고득락의 의미도 있다. 그러니까 열심히 기도해서 악을 물리친다는 의미로 보시면 돼요. <동지기도를 맞이하여 새해에는> 그래서 동지 기도를 맞이해서 새해에는 기쁨이 있어야 되겠죠. 부처님을 뵙는 기쁨. 둘째는 법을 듣는 기쁨, 세 번째는 보시하고 후회하지 않는 기쁨, 보시해가지고 후회하고 이런 사람은 없죠. 여기는 없는 것 같아요. 진관사 신도님들은 뭐든지 잘 보시를 해서, 남도 도와주고. 우리가 바깥에 신발이 삐뚤어지면 똑바로 놔줄 줄 알고, 그리고 또 이렇게 식판을 드릴 때 노보살님들 먼저 드리려고 하는 그런 마음이 보이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런 마음이 다 진짜 진보시에요. 그러니까 나보다, 내가 하려고 하는 것보다 노인네들을 위해서 보시하는 것도 하나의 보시에 들어가요. 그다음에 넷째는 뭐예요? 뭔가 모든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는 게 최고의 복이에요. 그러니까 남을 불편하게 하는 거는 복이 아니에요. 그래서 복이 모자라면 뭐라 그래요? 박복하다고 하잖아요. 박복하다라는 말 들어보셨죠? 지혜가 모자라면 천치라 그랬잖아. 우치라 그랬잖아요. 지혜가 모자라면, 아까 그랬잖아요, 숙맥이라 하듯이, 지혜로워야 되는데 지혜가 없으면은 바보. 저번에 우리가 수륙재 때 주리반특가 얘기했죠. 자기가 빗자루로 쓸어라, 빗자루질 해라, 이렇게 계속 하니까 거기에는 문제가 없는 거예요. 다 자기한테 문제가 있는 거지. 그러니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의 탓도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허물도 보면 안 돼요. 불자들은 좋은 생각 내고 좋은 맘만 내셔야 돼요. 그래서 우리가 보통 상불원천(上不怨天)이라 그러고 하불우인(下不尤人)이라 그래요. 상불원천, 원자는 원망할 원자예요. 그래서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위로는 뭐 잘 안 되면 누구 탓하고 원망하고 그러죠. 절대 그러면 안 돼요. 아래로는 하불우인이에요. 아래로는 다른 사람에게 허물을 탓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요. 탓하면 안 돼요. 그게 중용에 나오는 얘기인데 우리가 가만히 있다가 급하면, 다급하면 부처님한테 와서 매달리죠. 멀쩡히 평상시에는 아무것도 안 하다가 급하면 부처님 다리 붙잡고 거기에 매달리는 사람이 있어요. 그냥 꾸준히 하셔야 돼요. 그러면서 제가 어디 보니까 평상시에는 잘 향을 켜지도 않다가, 절에 안 오다가 급하면 절에 와가지고 막 다급해가지고 ‘뭐 해달라, 뭐 해달라, 스님 뭐 해주세요, 뭐 해 주세요,’ 하는데 그거 그러면 안 돼요. 평상시에 열심히 부지런히 여일하게 하셔야 돼요. 오늘 잘했다 내일 못 했다가 3일날 또 못 했다가 5일 날 되면 잘했다가 그렇게 들쑥날쑥하면 안 되겠죠. 꾸준히 해야지, 성적이 좋아야 돼요. 절에 다니는 성적이.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하면 안 돼요. 그냥 쭉 몰려서 구경만 하고 이래도 안 돼요. 자기의 신심력과 원력과 신심과 우리들의 공덕력이 있어야 돼요. 살아가는 데. 참 최고가 신심(信心)이에요. 신심이 있어야 되고, 묵언(默言)해야 되고 무집착(無執着)해야 되고 집착이 없어야 되죠. 편안해야 되고 마음이 동하지 않고 부동심(不動心)이 돼야 되고 인내(忍耐)가 있어야 돼요. 인욕(忍辱)이 있어야 돼요. 참지 못하고 발끈해가지고 싸움하고. 싸움하는 것도 자기한테 좀 뭐가 있어서 싸움하는 거지, 싸움 잘하는 사람있어요. 그러니까 이게 구설이 없으면 싸움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자꾸 헐뜯다 보니까 입으로 싸움하잖아요. 이 싸움하는 건 입으로 하는 거죠. 몸으로 하는 거는 구타라 그러죠. 그런 것도 조심해야 돼요. 신구의 삼업을 잘해야 돼요. 주리반특가가 깨친 그 게송 있죠. '수구섭의신막범 여시행자 능득도(守口攝意身莫犯 如是行者 能得道)', 입으로나 몸으로 행동을 함부로 하지 말고 이와 같이 행하는 사람이 능이 도를 깨칠 수 있다 그랬죠. 그래가지고 주리반특가가 그걸 깨쳐가지고 자기가 신통력이 셌는데, 부처님께서 발우를 들고 가시다가 주리반특가한테 맡겼잖아요. 그러니까 벌써 알고 맡긴 거예요. 파사익왕의 초대에 당신은 쭉 들어갔는데, 스님네들을 점검하다가, 문지기가 ‘아니 반특가는 깨치지도 못했는데 왜 들어가냐’고 못 들어가게 했어요. 그렇지만 거기서 나는 깨쳤다 안 깨졌다 이런 말 할 필요도 없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막 안 들어가고 밖에서 있었는데, 나중에 부처님이 발우가 있어야 발우공양을 할 수 있잖아요. 공양을 못하고 있었는데 주리반특가가 그걸 알고 팔을 어디까지 밀었어요? 부처님한테까지 팔을 쭉 내밀었잖아요. 부처님은 다 알고 계시고, 파사익왕하고 제자들이 깜짝 놀랐어요. 언제 주리반특가가 신통력이 있어서 이렇게 팔을 내밀어서 부처님께 줬나 하고 물어보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만 번, 천 번, 만 번 들어도 한 번 행동하는 것만 못하다. 실제로 행동하는 것이 최고다” 그랬어요. 여러분들은 아는 것에 그치지 말고 아는 것은 세지변총(世智辨聰)이고 지식이에요. 정말 깨치는 거는 마하반야바라밀이에요. 그래서 지혜도 바라밀이 되야 되고, 보시도 바라밀이 겸한 보시를 해야 돼요. 자기는 돈도 없는데 막 빌려가지고 하는 사람 있죠. 그건 안 돼요. 남의 돈 빌려가지고 뭐 한다, 뭐 이렇게 보시하라니까 빚 내가지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지마시고, 그냥 나는 몸으로 좀 보시해서 봉사를 해야 되겠다. 이 봉사도 하나의 보시에요. 그냥 잘 이렇게 보시해가지고 도와주는 봉사도 하나의 우리가 보면은 실천행을 하는 분이에요. 보현보살이에요. 그래서 보현보살은 마지막에 보현보살행을 하시면서 남을 위해서 도와줘서, 남을 위해서 희생해야 되겠다 하고 쭉 이렇게 행원을 하잖아요. 오늘 이제 팥죽도 드셨고 우리도 살아가면서 장애도 없어지고 병도 없고 무탈해야 되겠죠. 그러니까 열심히 기도하고 남을 위해서 기뻐하는 그런 게 있어야 돼요. 그래서 이 네 가지 기쁨이 항상 충만하고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재앙이 모두 소멸해가지고, 1년 내내 평생 내내, 재앙은 평생 내내 없어야 좋아요. 어떤 해는 올해는 내가 좀 이렇게 안 좋을 때는 보시를 확실하게 하세요. 베풀면은 그 나쁜 게 보시함으로 인해서 없어질 수도 있어요. 그리고 많이 아플 때는 저희 스님 보니까 선방에다 공양시키더라고요. 공양금을 보내가지고. 그러니까 그것도 재물이 많다 보면은 이 몸이 많이 약해져요. 그래서 재승박덕(才勝薄德)이라고도 해요. 재물이 덕보다 많아 고가 좀 있는 분들도 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보살님들도 열심히 기도하면서 팥죽 먹고 되도록 힘이 있으면은 무조건 남을 위해서 베푸는 것밖에 없어요. 우리도 스님네들이 이렇게 많은데 제가 못한 걸 해주니까 얼마나 좋아요. 고맙잖아요. 그래서 동방아라도 한벌 해서 보시해야 되겠다 이런 마음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입춘 전에 여러분들 동방아 회향하겠습니다. 주지스님께서도 내복 공양을 하신대요. 그럴 때는 다 베풀고. 그러면 그게 다시 액땜이 돼서 원화소복이 되는 거예요. 오늘도 여러분들 팥죽도 드시고, 배도 고프시죠? 아침도 덜 드시고 오셨으니. 오늘 법문 마칠게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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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법회]1217 일요법회 법문
자현스님 2023-12-17
안녕하세요. 오늘 이제 말씀드릴 내용은 이렇게 연말연시에 지금 무슨 시즌이냐면 동지, 좀 있으면 동지, 그리고 새로운 한 해를 맞는, 진짜 이게 뭔가 싶을 정도로, 이제 음력 설까지 사람들이 약간 떠다니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안 좋아하거든요. 저는 예전에 전두환 대통령 때 양력으로 통일하려고 했을 때 ‘그게 좀 관철이 됐으면 국가 경쟁력이 더 좋았을 건데’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양력은 양력대로 뭐 시무식 한다 하고, 또 그게 음력 설까지 이렇게 흐트러진 분위기가 가면서 한 한 달 반에서 두 달 정도가 흐지부지돼요. 그러니까 음력이 맞다, 양력이 맞다를 얘기하는 게 아니고, 조금 사람이 안정적이지 않고, 제일 안 좋은 게 이렇게 떠다니는 듯한 느낌, 개인적으로는 그런 걸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래서 <방향이 정해지면 사실 힘든 거는 힘든 것도 아니다. 방향이 안 정해져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를 때가 가장 힘들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 그런 점에서 보면 한국이 좀 특이해요. 그리고 이제부터 다음 주가 동지입니다. 22일이 동지. 그리고 예전에 그 동지가 설날이었어요. 원래는 동지가 불교 명절 아니에요. 그냥 전통 명절의 일부가 수용된 겁니다. 그런 식으로 수용되는 게 칠석하고 동지가 가장 대표적이에요. 그리고 제사도 마찬가지죠. 제사도 기제사는 불교에 없어요. 제가 늘상 말씀드리지만, 안으로 제자, 그러니까 제비 제자로 들어가는 거는 없어요. 불교 안에는 원래는 없어. 그래서 불교 재사는 다 밖으로 재자, 그건 재개한다는 뜻이고, 몸과 마음가짐을 바로 해서 올바른 관점들을 가지고 이렇게 하려는 게 불교의 목적인 거고, 안으로 제자는 돌아가신 분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그런 유교적인 특징적 문화 구조입니다. 그래서 그럼 불교에서는 왜 그렇게 하느냐. 위탁입니다. 위탁. 해달라고 하니까 그래서 수수료 받고 해주는 거예요. 주력 상품은 아니고. 근데 이게 발음이 또 애매하게 같아서, 안타깝게도 그걸 계속 헷갈려요. 그런데 19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제사라고 안 했었다니까. <죄> 발음이었었다니까. 그게 죄 발음이었는데 지금은 <제> 발음으로 완전히 바뀌면서 두 발음이 글자상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발음상에서 차이가 없어서 계속 혼란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세상에는 오래 겪어봐도 배우지 않으면 모르는 부분들도 있어요. 어떤 거는 오래 지나면 스스로 알게 되는 게 있고, 그렇게 가장 대표적인 게 이제 언어 같은 거고, 그거는 그래서 어학을 잘하는 사람이 꼭 머리가 좋으냐. 그거는 상황에 따라 다르죠. 그러니까 환경 자체가 아버지가 외교관이었어요. 이렇게 해서 굴러다니다 보면 스스로 체득되는 게 어학이고, 어떤 거는 꼭 배워야만, 익숙하다고 아는 게 아니고 꼭 배워야만 되는 것들도 있고. 그래서 동지 같은 경우도 사실 동짓날 팥죽 먹고 뭘 어쩌고저쩌고 한다더라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봤지만, 내용적으로 배우지 않으면 안 들어옵니다. 이런 거는 안 들어옵니다. 팥죽을 아무리 먹어도, 제삿밥을 아무리 먹어도, 제사에 대한 내용을 모르고, 동지에 대한 내용은 모릅니다. 그러면 그런 것들이 다 사라지는 문화인데 그런저런 해서 이제 끝내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아마 이게 우리나라가 점점 더 선진화되면 잘 모르겠어요. 선진화가 어디까지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게 합계 출산율이 너무 떨어지니까, 이게 이제 올라가다가 발목을 잡히지는 싶은데, 선진화될수록 문화적 역량이 훨씬 더 강화됩니다. 그래서 전통문화에 대한 부분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 그다음에 어떻게 그것을 현대화시킬 것이냐라고 하는 게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관건이 되거든요. 그래서 동지에 대한 얘기를 해드리려고 해요. <동짓날 팥죽 먹는다> 뭐 이런 얘기는 들어보셨잖아요. 그리고 거기에 새알심을 먹고, 그 새알을 나이만큼 먹는다는 둥. 근데 지금 여러분들 연세는 나이만큼 먹으면 죽어요. 동지가 제삿날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거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아요. 그래서 동지 어떤 날인지는 다 아실 거예요. 그게 이제 태양이 가장 낮이 짧아서, 태양이 부활하는 날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동지는 다 따졌어요. 태양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이 지구에 어떻게 보면 생명이 유지되는 데 있어서 태양보다 중요한 거는 사실은 찾아보기가 어렵죠. 그런데 신화들을 보면 태양신들은 또 이게 조금 만만합니다. 벼락신이 제일 세고. 기독교의 여호와 같은 경우도 그게 벼락신 계열, 아니면 시나이산의 화산신, 그러니까 화산이라든지 벼락이라든지 불은 통제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그게 어떻게 보면 신격적으로 좀 더 강력한 모습들을 보이고, 태양은 이게 강력하긴 한데 맨날 동일하게 움직이는 거야. 그러니까 신화 구조 속에서 보면 조금 만만합니다. 이렇게 돌아가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벼락하고는 비교가 안 되죠. 태양이 훨씬 중요하죠. 그래서 제우스도 그렇고 인도의 힌두교에 제석천도 그렇고, 다 벼락신이에요. 벼락이 뭔가 포스가 강렬하지. 그리고 통제 안 되고. 그리고 저 마른 벼락 같은 거 치면, 유목 문화 쪽에서 그 마른 벼락 치면 진짜 뭔가 있어 보이거든. 조짐도 없이. 그래서 진짜 하늘에서 뭔가 소리들이 나오는 것 같고. 물론 우리 같은 경우는 이제 부부싸움 하나 이런 정도 생각을 하겠지만, 또 신성하게 여기는 분들도 굉장히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태양의 중요성은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기 때문에, 그래서 태양 숭배라는 건 전 세계적으로 다 있고요. 이제 강도의 차이들이 있는 거고. 그리고 태양의 시작점이 이제 동지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태양을 시작점으로 해서 한해가 시작된다라고 생각했던 그런 문화 구조가 있어요. 그게 이제 동아시아에 존재했었던 그 흔적이 지금까지 동지로 남아 있는 거고. 그다음에 기독교 전통에서도 예수의 탄생일을 잘 모르는 거죠. 그러다가 로마의 동지, 로마의 동지를 그냥, 예수 탄생일을 어떻게 알겠어, 그게 뜬 사람도 아니고, 처음부터 집안이 좋았던 것도 아니고, 잘 나가는 사람도 아니고, 마구간에서 태어난 사람의 출생 연도를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지금도 기독교 안에서는 기원전 4년 정도 아니냐라고 말하는 정도고, 생일을 알 수 있다는 건 더 불가능한 얘기고, 그래서 나중에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이제 동지, 로마에서도 굉장히 큰 명절이었어요. 특히 양력을 치는 데 있어서는 태양의 시작이기 때문에 동지는 양력입니다. 동지, 하지 뭐 이런 거. 해니까, 해니까 양력이에요. 그래서 예전에는 지금은 동지가 안 움직이고 예전에는 동지가 계속 움직였어요. 지금 설날처럼. 예전에는 음력 설은 안 움직인 거죠. 달력을 음력으로 썼으니까. 그 대신에 동지, 입춘 이런 애들이 계속 움직였거든요. 근데 지금은 동지는 안 움직이고, 그래서 동지는 보통 21일에서 23일 사이에 들고, 로마 쪽은 25일에 드는 거예요. 그게 이제 약간 위치가 달라서, 그래서 크리스마스도 동지예요. 그래서 우리가 동지를 두 번이나 한다니까. 그래서 우리 동지 한 번 하고, 제네 동지하고. 이거 참 재밌지. 동지 두 번 하는 문화예요. 그래서 새해가 시작된다라고 생각했어요. 동아시아가 음력만 쓴다라고 생각하는데, 고대로 올라가면 유목 문화가 나타나요. 유목 문화가 존재했던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그래서 양력을 썼던 문화가 존재합니다. 굉장히 재밌어. 그래서 예전에 아마 양력을 좀 썼었던 것 같고, 양력 쓰면 나중에 이제 12지가 나와요. 12지가 다 들어온 겁니다.그런 복잡한 얘기를 할 거는 아니고, 양력을 썼던 문화가 있고, 나중에 음력으로 싹 바뀌거든요. 음력으로 바뀌고, 그리고 지금까지 음력으로 내려오다가 근래에 다시 우리가 양력으로. 이건 서구적 경향이잖아요. 그죠? 그래서 양력으로 쓰던 문화가 맨 마지막에 남은 게 이 주나라 때. 주나라라고 들어보셨어요? 중국의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 그래서 하나라는 그냥 전설적 왕조입니다. 하나라 이전에 있었던 임금이 여러분들이 한 번씩은 들어보셨고, 누군지 잘 모르겠는 요임금, 순임금입니다. 당나라의 요임금, 우나라의 순임금. 그거는 그냥 거의 전설적인 얘기고, 그다음에 하나라라고 하는 우임금이 시조인데 이것도 역사적으로만 기록만 있지, 아직 유물이 제대로 발견된 건 아니에요. 그래서 은나라 때부터, 이제 황하문명 하면 은나라 은허의 발굴 이렇게, 얼굴 표정 보니까 이게 예전에 전생에 한 번 들었던 기억, 그 정도면 정상입니다. 교과서에 나옵니다. 그래서 그 정도 생각하시면 돼요. 그리고 그 은나라를 계승하는, 그러니까 은나라 다음 왕조가 주나라예요. 그 주나라가 공자가 제일 좋아했었던 나라이기도 하고, 공자가 살았을 때를 동주시대라고 얘기를 하고, 그게 이제 여러분이 한 번씩 또 다 들어보신 춘추전국 시대입니다. 춘추전국시대. 그래서 그 주나라 때 설이 태양의 시작 동지예요. 그러니까 주나라 설날이에요. 제가 그런 얘기하는데 사람들은 1월이 정월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정월이 1월은 아니다. 정월은 왕조마다 다르다. 그러니까 주나라 때는 11월이 정월이에요. 정월은 시작하는 기준 달이라는 의미예요. 1월은 진짜 1이라는 의미가 있는 거고, 근데 지금은 1월하고 정월이 같으니까, 사람들이 ‘정월이 1월 아니에요?’ 이렇게 생각하지만 실제로 1월과 정월은 달라요. 그래서 11월달에 동지 들잖아요, 음력으로는. 잘 모르시는 분들은 강부자의 달타령 생각하시면, 동지 이렇게 그거 쭉 들어봐, 이렇게 하다 보면 11월쯤 가면 동지 얘기가 나옵니다. 동지섣달 긴긴밤 이래가지고. 이때 이제 춥고 이랬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고. 이때 달력을 줘요. 절에서 달력 주던가요? 안 줘요. 원래 동지 때 주는데, 동지 때 주면 이미 딴 달력이 다 걸려 있어. 예전에는 동지 때 줘도 문제가 없었던 이유는 뭐냐 하면, 11월달에 주는 거야. 그러니까 별 문제가 없는데, 지금은 동지가 이게 우리가 기준이 바뀌었잖아요. 양력으로 바뀌는 바람에 12월 22일날 달력을 주면 이미 다 좋은, 선점하고 있다니까. 다른 달력이. 그리고 달력을 옛날처럼 방마다 걸지도 않아요. 집에 다 해봐야 하나 정도 걸까. 이렇게 예전에 여러분들 같은 경우는 일력도 걸었잖아. 달력을 거는 게 아니고 일력 걸어가지고. 일력 뭔지 아시죠? 이게 파란 종이 줄까, 빨간 종이 줄까, 까만 종이 줄까 이래 갖고 이렇게 삼색으로 나오는 거. 그리고 그 일력 쓰는 집들이 대부분 또 특징이 날짜가 안 맞아요. 자식이 많으면 화장실 간다고 막 뜯어가지고. 그리고 그거 뒤집어서 닦아야지, 또 이렇게 닦으면 거기 빨간 거 묻어요. 그래서 동지가 설날이에요. 그래서 설날 팥죽을 먹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것들을, 삿된 것들을 다 물리친다는 빨간색 선호예요. 빨간색 선호. 그리고 그건 팥에 효과가 있는 게 아니고, 그 빨간색, 불, 태양 이런 걸 상징하는 거예요. 그래서 붉음에 대한 숭배가 존재해요. 그래서 제가 그런 얘기하는데 임진왜란, 병자호란 끝나고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이렇게까지 빨리 퍼질 수 있었던 이유가 뭐냐 하면, 삿된 거를 물리치려고 하는 거에 대한 추구, 불확실성이 많을수록 쓸데없는 거 갖고 사람들이 잘, -지금은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도 안 죽는 그런 일들,- 진짜 사소한 걸로 감기 걸렸다가 죽고, 풀 베러 가서 꼴 베러 갔다가 이렇게 풀에 잠깐 비었는데 막 썩어들어가면서 죽고, 이렇게 막 희한한 일들로 죽어요. 그래서 제가 그런 얘기하잖아요. 의료적으로는 가장 혁명적인 것 중에 하나가 빨간 약이라고. 빨간 약만 있어도 안 죽어요, 안 죽어. 근데 그 빨간 약이 없어서 죽었다니까, 진짜. 그래서 그렇게 너무 불확실한 시절이 많을 때는 삿된 것들을 다 쫓아내야 돼요. 그 삿된 게 귀신도 되고, 안 좋은 기운도 되고 이거 구분 안 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그거 구분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그게 바이러스도 되고 세균도 돼요. 그래서 이제 애 낳고 나면 금줄 칠 때도 숯하고 고추잖아. 고추는 빨간색이라는 그 색깔 상징이에요. 고추 자체에 에너지가 있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고추 자체에 에너지가 있으면 파란 고추 써도 되지. 빨간 고추를 써야 돼. 색깔하고 관련된 거예요. 색깔하고. 숯은 그 안에 불이 들었다고 생각을 해요. 옛날 사람들은. 그래서 옛날에 숯을 집 안에서 때는 것 때문에 숯을 때거든요. 방 안에서. 그러니까 우풍이 세기 때문에 화로 같은 요렇게 놓고 거기서 이제 숯을 때요. 거기서 장작을 때면 지가 죽어요. 지가 죽어. 숯을 때거든요. 아니 예전에 어른들은, 연세 많으신 분들은 댁에서 보시기도 하셨을 거야. 시골에 그런 게 있었었어. <짱구는 못말려>를 보면 짱구는 발 밑에다가 그걸 넣고 이렇게 담요 같은 걸로 싸고, 그게 일본 문화고, 우리는 이렇게 화롯불을 피는 거죠. 그리고 거기서는 숯을 쓰는 거고. 그래서 그 안에 불이 들어있다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한쪽에는 불이 들어 있고, 한쪽은 불색이고 이렇게. 그리고 장 같은 거 담을 때도 장독대 전체를 고추로 이렇게 금줄을 치는 경우도 있고, 그다음에 장 안에도 넣죠. 간장 같은 데도 고추 닦아가지고 넣고. 그거 안 해보셨어요?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게 밖으로도 못 들어오고. 그러니까 장독대 전체를 금줄로 치고, 장독 하나하나도 금줄로 치고 안에도 넣고. 혹시라도 훅 갈까 봐. 왜냐하면 장 자체의 맛이 이게 어떻게 보면 썩어버리면 발효가 안 되고 썩는 경우가 있거든.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게 옹기라는 것의 특성상, 옹기 사이에 그 균들이 다 빠지질 않아요. 그게 조금 관리를 잘못하면. 그걸 죽이기 위해서 장을 담글 때 원래 불로다가 이렇게 한번 소독을 하거든요. 그 안에다가 불을 태워서 짚 같은 걸로 한번 태웁니다. 근데 그걸로도 애들이 잘 안 죽어요. 그게 잘못되면 이제 장이 상해버리면 겨울에 먹을 게 없어요. 그래서 장에 대해서 신성시 여기는 그런 문화들이 있고, 거기에 이제 금줄 같은 걸 치는 거고. 그래서 팥에 효과가 있는 게 아니고 빨간색의 효과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거 절에서는 지금도 절 문화의 일부가 들어와 있어요. 여기도 그런 게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약간 빙의 같은 거 된 분들 구병시식이라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약간 이렇게 다른 성격. 이게 그러니까 그거랑은 좀 틀려, 뭐 정신 분열이나 이런 거 하고 약간 달라. 그렇게 해서 신병 같은 거 있는 분들 뭐 해서 구병시식해달라 그러면 팥을 뿌리는 문화가 있어요. 이게 되게 재밌어. 이게 귀신들의 트랩에 해당하거나, 안 그러면 귀신을 저격할 수 있는 물건들이 많이 있거든. 제가 그런 거 진짜 전문가인데 그 얘기를 다 해드릴 시간은 안 될 것 같고, 동지 얘기에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동지. 그래서 팥죽을 먹어서 안을 한번 씻어내고. 동지 의례가 뭐 하고 똑같다고 생각하시면 되냐면 설의례와 똑같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설에는 떡국 먹습니다. 떡국은 흰색이라고 하는, 그건 빛을 상징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신문에 예전에 사설 쓸 때도 그 얘기를 썼거든요. 설 떡국에는 지단 넣지 마라. 지단 넣지 마라. 후추 뿌리지 마라. 김 뿌려 먹지 마라. 원래 그 빛으로다가 그 나쁜 것들을 한번 씻어준다는 그 의미가 있어요. 그 의미가 진짜예요. 그리고 내가 이 얘기하니까 사람들이 그런 게 어디 있냐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 있어. 근데 연세 많으신 분들은 알아요. 유교 떡국하고 불교 떡국이 달라요. 유교 떡국은 수직 떡국입니다. 그래서 동전같이 생긴 거고, 그래서 돈 들어온다는 의미로 먹어요. 불교 떡국이 사선 떡국입니다. 이거는 삿된 거를 물리친다는 의미예요. 그러니까 그게 어디서도 나타나냐면 창살 구조에서도 나타나. 저렇게 정방향의 창살이 있잖아. 바둑판처럼 생긴 창살 저게 유교 창살이에요. 그리고 불교 창살은 빗살입니다. 빗살은 햇빛을 상징하는 거예요. 그 빗살입니다. 빗살무늬토기 같은 거 할 때. 그래서 나쁜 것들을 물리친다는 거예요. 그 빗살무늬 토기 쓸 때 보면 밑에가 V, 이렇게 생겼거든요. 이런 얘기하면 되게 재밌지 않아요. 국사책에 이렇게 보면, ‘야 토기를 이렇게 만들면 어떻게 세우냐.’ 아니 그렇잖아. 그냥 생각을 해보면 이게 밑에가 이렇게 판판하게 평저형으로 만들어야지, V라인으로 만들면 도기를 어떻게 써. 그런 생각 안 해보셨어요? 그게 왜 그러냐면요. 해안가나 강변에서 거기에다가 이걸 꽂아서 쓰는 거예요. 땅이 좀 무르니까 이걸 꽂아서 쓰는 거예요. 모든 인류가 예전에는 다 강변이나 이런 데 살았거든요. 그게 조금 유리하잖아, 생존에. 그래서 그걸 꽂아 쓰는 거야. 꽂아 쓰면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습기를 끌어들이기 때문에, 땅이라는 게 습기를 끌어들이기 때문에, 곡식을 그 안에다 저장을 하면 상해요. 이해가 되시죠? 수분을 당기니까. 근데 이 사람들이 지금 그걸 이해를 못하는 거야. 그래서 나쁜 게 자꾸 들어와서 우리 곡식을 상하게 하는데, 이렇게 해서 그걸 안 들어오게 하려고 그래서 햇빛을 그 안에다가 새기는 거예요. 그게 빗살이에요. 그래서 삿된 것들을 물리친다라고 하는 그 개념, 그래서 흰색, 흰색 개념, 흰색이 나쁜 거를 물리친다, 빛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흰색은 빛, 팥죽색같이 이렇게 붉은색은 불 아니면 태양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그래서 둘 다 삿된 것들을 물리친다라는 의미로 보시면 돼요. 그래서 제삿떡은 무조건 백설기입니다. 고사떡은 팥시루떡. 그래서 고사떡은 삿된 걸 물리치는 거고, 그다음에 그건 낮에 하는 거고, 여자가 중심이 돼서 하는, 그 집안에 여자가 중심이 돼서 하는 거예요. 리더 여자. 제사는 그 집 안에서 리더 남자. 그리고 밤에 하는 거고 완전히 달라요. 그래서 팥의 문화하고, 흼의 문화라는 게 있어, 흰색에 대한, 그래서 우리가 백의민족 할 때도 사실은 그게 빛의 숭배, 태양숭배랑 관련돼서 내려오는 거예요. 그래서 제사용 백설기는 건포도나 콩을 넣으면 안 됩니다. 그거는 제사 전용 떡으로 개발한 거예요. 그래서 맛없어요. 어쩔 수 없어. 그러니까 흼에 대한 숭배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조선 후기에 우리가 백의민족 어쩌고 어쩌고 할 때, 그거 다 유래가 있거든. 단군부터 내려오는 또 유래들이 있어요. 그런데 박달나무, 밝은 나무, 삼위태백. 이렇게 해서 흰 거에 대한 숭배들이 나오는데, 이게 흰옷을 입으면 이게 잘 상해요. 염색을 해서 입으면 거기에 염료가 들어가면서 견고하고 그다음에 덜 빨아도 되고. 조금 더 견고해져 천이. 그래서 조선 후기에 흰색을 못 입게 하려는 정책들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이제 국민이 저항을 했어요, 그 당시에. 그래서 지금까지도 계속 백의민족 어쩌고 어쩌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흰색을 입는 게 불길한 게 아니고 길한 거예요. 길한 거. 그래서 우리는 장례를 예전에는 길한 걸로 봐서 길례로 봤었기 때문에, 유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다 길례예요. 그래서 돌아가셨다, 온 곳으로 돌아가셨다, 떠돌아다니시는 분이 돌아가신 거고 그건 길한 거다. 이래서 흰색으로 전송하는 그런 문화가 있어요. 근데 지금은 흰색으로 하면 그게 약간 조금 불길한 건가 이렇게 보시는 분도 있어. 흰색은 좋은 거,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 그래서 흰 쪽으로다가 가려고 하는 게 설날 의례에서 나온다는 거고. 그래서 떡국을 먹어서 전체를 다 씻겨 내려가는 거예요. 안쪽까지 전부 다. 그리고 팥죽도 똑같은 의미다. 삿된 것들을 전부 물리치고, 이렇게 처리를 하는 거고. 주변에도 뿌리죠. 팥죽을. 원래는 동지시가 있어요. 시가. 그게 메인입니다. 달력에 보면 동지시가 나올 거예요. 그때 팥죽을 싹, 이렇게 집 주변을 싹 뿌리게 돼 있어. 그리고 아파트같이 이렇게 잘 안 되는 경우는 문으로. 그래서 이게 설날 떡국하고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동지 팥죽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리고 그 새알은 태양의 부활을 상징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동지하고 부활은 다 연결이 돼요. 해의 부활. 그래서 기독교도 그 부활 얘기하다가 로마 동지로 이렇게 붙여버리는 거고, 그리고 주역이나 그다음에 주자가례에도 그렇게 나옵니다. 동짓날 시조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자기 집안의 가장 시조, 시작, 시작점에. 그리고 주역에는 7일 래복(來復)이다. 7일만 기다리면 다시 회복된다. 이때부터 이제 양 기운이 차면서 요렇게 올라가기 시작하거든요. 그래서 주역괘 중에서 이 동지괘가 지뢰복(地雷復)괘인데 지뢰복괘가 제일 좋은 괘 중에 하나예요. 그래서 새알이라고 하는 것은 부활의 상징이에요. 그리고 그게 태양의 부활, 다시 떠오르는 태양의 부활. 그리고 알이라고 하는 게 어디든지 다 마찬가지예요. 새로운 탄생 그다음에 더러움 없는 탄생이라는 상징성을 가져. 그래서 우리 시조들이 다 알에서 태어났잖아.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보면 새의 자손, 김알지, 박혁거세, 뭐 할 거 없이 다 알 계열이잖아.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v라인 별로 없고 동그란 얼굴 많고 이런 게 다 그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 알과 관련해서 제일 유명한 게 그 데미안이잖아. 데미안. 예전에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그래서 부활한다라고 하는 그 의미, 그래서 그걸 먹으면서 내가 양기를 충만하게, 그러니까 처음 시작할 때 첫 단추를 바로 꿴다라고 하는 게 동짓날에도 있고, 그다음에 설날에도 있는 거예요. 이 두 번 다 있는 거고. 그다음에 동지가 예전에는 음력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위아래로 왔다 갔다 해요. 동지가 앞에 들었다가 우리도 설 보면 설이 앞에 들었다가 뒤에 들었다가 이게 막 이러거든. 그래서 달력 받으면 설 도대체 언제 있냐 이거를 좀 보시는 분들도 많이 있거든요. 스님들은 특히 더 봅니다. 왜 어디 성지순례라도 한 번 가려면 설 전에 이렇게 빨리 갔다와애 해서 그걸 또 봐요. 그런데 예전에는 이제 음력 기준이다 보니까 동지가 움직이는 거예요. 설은 붙박이로 있는 거고. 그래서 동지가 11월 초순에 들 때가 있고, 중순에 들 때가 있고, 하순에 들 때가 있어요. 초순은 1일에서 10일 사이, 중순은 10일에서 20일 사이, 하순은 20일에 30일 사이 이렇게. 그래서 초순에 들면 한 살을 더 빨리 먹는대. 조금 더 빨리 먹는대. 그러면 애들이 좋아한대. 애들은 미래지향적이거든. 그러니까 말할 때 보면 젊은 사람인지 나이 든 사람인지를 구분하는 방식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물론 상태만 봐도 아는데 상태는 여러분들이 다 이렇게 젊어 보이기 때문에 요즘 신선술을 배우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얘기예요. 다 그 나이로 보여요. 다 그 다이로 보여. 그래서 젊었을 때는 어린 애들은, 근데 그 말하는 건 진짜 분명히 달라요. 젊은 사람들은 미래지향적인, “내가 뭘 할 거야”라는 말을 자주 하고, 그다음에 연세가 드실수록 과거 이야기를 하는데 과거도 더 옛날로 돌아갈수록 나이가 더 든 겁니다. 그래서 한 50 넘어가면 갑자기 부모님 생각이 나고, 이렇게 그게 급격하게 부모님 생각이 나거나 옛날 생각이 나면 갈 때가 얼마 안 남은 겁니다. 그래서 그럴 때는 자신을 반성하고 수렴하는 생각들을 해야 돼. 그런 정도 상황에 이르렀는데 그건 사람마다 달라. 어떤 분은 에너지가 강력하신 분은 60대까지도 진취적으로 나갈 수 있고, 확장기로 갈 수도 있는 거고, 어떤 분은 40대 중반에도. 그게 탈모랑 똑같은 거잖아. 어떤 분은 30대에도 광활하고, 어떤 분은 50대에도 부모님 유전자가 좋았는가 봐요. 이런 분들 있고. 그다음에 우리같이 이렇게 키 큰 스님들이 이렇게 보면 아무리 여자분들이 이렇게 막 머리를 세워도 위에 헬기장이 이렇게, 잘 사시는가 봐요. 헬기장 났네. 그리고 연세 드신 분들이 이제 조금 귀찮아서 염색 잘 안 하면 위에 만년설 올라오고. 그래서 동지 때, 동지가 좀 일찍 들어오면 애들이 좋아한대. 그래서 그걸 애동지라고 하고, 그다음에 연세 드신 분들은 조금이라도 늦게 나이를 먹는 걸 좋아한대. 그래서 정부 차원에서 우리 다 나이를 까줬잖아. 어른들을 위해서. 이게 노령화 사회에 굉장한 복을 준 거예요. 근데 고마워하질 않더라고. 그래서 이제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고 하고, 그다음에 중간에 들면 이걸 중동지. 예전에는 동지 주머니라는 문화도 있었어요. 복주머니 문화. 복주머니. 요즘은 동지 주머니가 없어졌는데 동짓날 이렇게 주머니를 주는 문화가 있었었어요. 그리고 주머니를 달아매는 문화도 있었고. 지금은 사라졌는데 저희 어렸을 때만 해도 복주머니는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복조리 많이 있었었어요. 그래서 집에다 복조리를 걸어놓고. 그러니까 이게 도정 기술이 좋아지면서 복조리가 사라진 것 같아요. 그전에는 쌀에 이물질들이 많이 있었잖아요. 돌 같은 거 있고 막 이래가지고, 그래서 이제 조리로 이렇게 이렇게 해가지고 쌀만 잘 뜨게 하는, 무게 차이를 이용해서 그런 거 했었잖아요. 그래서 복만 삭삭삭 건지고 나쁜 거는 날리겠다는 게 복조리 문화야. 그리고 복주머니는 복만 착착착착 담겠다라고 하는 게 복주머니 문화예요. 그래서 복주머니 문화는 동지 쪽하고 좀 더 가까운 것 같아. 그래서 동지 주머니라고 하는 문화가 있어. 그래서 이런 진관사 같이 이렇게 상품 개발을 여기는 계속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것 같더라고. 동지 주머니 제가 추천합니다. 지금 올해는 늦었고, 내년쯤에. 그런 문화가 있고. 그다음에 달력을 주는 건 이제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이다. 시간의 지배자는 최고 권력자입니다. 그래서 조선의 임금은 최고 권력자가 아니기 때문에, 조선은 자치국이에요. 독립 자치국이었지만 제후국이었어요. 그래서 달력 반포권이 조선에 없었죠. 중국 거를 갖다가 쓰는 거죠. 황제만이 시간을. 그렇다고 해서 속국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나갈 때는 완전히 자치, 황제를 했거든요. 그래서 고려시대 때까지만 해도 황제 칭한 게 상당히 나와요. 그리고 개성 궁궐이 만월대 유적이거든요. 지금 만월대 개성에 고려 궁궐 유적을 보면 문이 5개예요. 임금을 만나러 들어가는데 문이 5개. 경복궁이나 창덕궁은 문이 3개입니다. 뭔 뜻이냐면 문이 3개면 제후국이에요. 문이 5개면 황제국입니다. 근데 중국에 자금성 가시면 문 5개를 통과해야 임금님한테까지 갑니다. 황제국이에요. 그게 오문 체계라고 하는 거거든요. 오문 체계, 삼문 체계라는 게 있어요. 그래서 고려 때는 오문 체계를 쓰려고 해요. 그러니까 황제 같은 걸. 요즘 진관사랑 관련된 드라마 있잖아, 고려 거란 전쟁. 그런 걸 보면 굉장히 자주적인 모습들을 고려는 보였었어요. 조선이 그게 따라지 국가라니까. 조선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왕조예요. 사실. 두드려 맞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기어. 이런 나라는 내가 생전에 처음 보는데, 알아서 기어. 나라 문 닫을 때도 전쟁을 해서 진 것도 아니고 그냥 알아서 조약으로 져. 제가 그런 얘기하잖아. 조선 국민은, 조선 백성은 자기 나라가 망한 줄 몰랐다. 진짜예요. 그러니까 한국전쟁같이 이런 상황에서 나라가 망하면 우리가 이래서 망했는가 봐. 조약으로 망하면 그건 너무 좀 심하지. 그건 약간 미개한 나라들이 끝날 때 나타나는 현상이거든. 그러니까 제대로 된 어느 정도 힘이 없는 나라들, 그렇게 되는 거지. 그래서 좀 조선이라는 나라가 슬퍼. 그래서 달력 시간에 대한 권한이 조선에 없었어요. 그래서 중국의 명나라나, 청나라 그쪽에서 황제가 달력을 반포하면 그 달력을 갖다가 다시 나눠줘요. 그래서 그런 걸 보고 청장력, 황장력 뭐 이렇게 합니다. 그래서 문무 백관들에게 달력이 딱 돌아가면 그게 다시 민간까지 쫙 퍼지게 되는, 그래서 시간의 지배자라고 하는 것이 사실 세계의 지배자라는 인식이 예전에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영국이 잘 나갈 때 그리니치 천문대를 중심으로 해서 시간의 지배자가 됐었잖아. 그러고 보면 그러니까 기준의 지배자라고 하는 거는 뭐든지 다 강력한 것 같아. 지금 우리가 미터법 쓰는 거는 프랑스잖아. 프랑스에서 만든 거잖아. 프랑스에서 이렇게 동의를 구해서 만든 거잖아. 그러니까 그런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거는 사실은 굉장한 자부심이 있는 거는 같아. 그래서 미국은 미터법 안 쓰잖아. 동지라고 하는 게 실제로는 태양의 시작, 그다음에 시간의 시작, 한 해의 시작. 그래서 그것만 말씀드릴게요. 이제 다 끝났으니까. 동지 때 한 살 더 먹는다는 풍습이 그래서 존재한다더라. 그리고 동지에는 세시 풍습이 있다. 그 이유는 뭐냐. 주나라 때 설이 동지였기 때문에. 설날이 동지였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는 이때만 동지를 지내는 게 아니고, 크리스마스라는 또 다른 동지, 로마 동지를 또 지내고 있다. 주나라 동지를 한 번 지나고 나서, 로마 동지를 또 지내고. 다 망한 나라 이게 이제 다 끝난 나라들인데 참 그걸 또 이렇게 두 번이나 한다는 것도 재밌고, 그렇기 때문에 이때 한 살 더 먹는다라는 풍속이 존재한다더라. 실제로는 태양 숭배의 문화에 입각해 있다더라. 그래서 이때 한 살 먹는다는 풍습이 있고, 그다음에 양력설에 한 살을 먹는다는 이야기가 있고, 음력설에 한 살 먹는다는 이야기가 있고, 그렇지만 띠는 입춘에 바뀐다더라. 띠는 입춘에 바뀐다더라. 그러니까 동지 지나고 설 지나고 나도, 입춘은 2월 4일 이때쯤 또 들어요. 그래서 설보다 뒤에 들 때도 있고 앞에 들 때도 있고. 또 이것도 양력이에요. 그래서 설 기준이 아니에요. 설 기준이 아니야. 그래서 띠가 바뀌는 거는 또 입춘 기준이에요. 그거는 또 다른 기준 때문에 그래요. 이게 기준들이 섞여 있는 거. 왜 이렇게 복잡합니까? 예전 왕조들이 하나로 한 게 아니고, 어느 정도 강력하면 지 색깔을 자꾸 내서 그래. 그러니까 제가 그런 얘기하잖아요. 우리 시계를 보면 그 흔적이 남아 있다. 60초라는 60진법, 12시라고 하는 12진법 체계가 남아 있고, 그다음에 10진법 체계가 있고 이 3개가 막 섞여 있거든요. 그래도 혼란스러워하진 않아. 익숙하면. 근데 동지, 입춘, 설, 이런 식으로 혼란스러운데, 지금은 왜 혼란스럽냐면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요.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데 기준은 그렇다더라라고 하는 것은 이해를 해 주세요. 그래서 꼭 연말연시 되면 그게 있어요. 해가 바뀌면서 폭죽 터뜨리고 막 하면서 무슨무슨 해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날 새해 아니다. 아직 그 해 안 왔다. 아직 그 해 안 왔다. 그 해는 입춘에 온다. 입춘에 온다. 그래서 제가 띠도 바꿔드린 적 있고. 보살님이 자기 띠를 몰라. 왜냐하면 설 뒤에 태어나니까. 근데 입춘 기준인 거 모르면 자기 띠를 헷갈린다니까. 그래서 제가 뭐라고 얘기하냐면 이런 거 복잡하고 어려우면 동지부터 입춘 때까지는 애 낳지 마세요. 그래서 환갑돼서 띠 안 분도 있어요. 저 때문에. 환갑잔치한다고 그래서 내가 뭐라 그러냐면 축복이다. 환갑을 두 번 챙겨 먹는. 당신은 환갑 두 번이다. 그래서 동지에 대한 이야기 기본적으로 이렇게 알아두시고, 어떤 시작점에서 자신을 바로하고 그다음에 삿된 것들을 물리치려고 하는 그런 의미는 어디에나 다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동지를 맞아서 동지 불공도 올리고, 그다음에 좋은 기운들, 그 태양으로부터 시작되는 좋은 기운들을, 양명한 기운을 받으면 삿되고 음한 것들은 스스로 물러난대요. 그리고 그런 식의 유풍이 나중에 정초기도 때도 한 번 더 들어와요. 그리고 그걸 작게 들이면 어디로 들어가는 거냐면 초하루 보름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기점에서 들어가는 거고. 그래서 뭐가 있냐면 일련의 모든 안 좋은 것들은, 액란은 정초에 도약한다라고 하는 게 있어요. 그리고 한 달에 안 좋은 거는 월초에, 살다 보면 노력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고 이게 그런 거 있어. 나는 운전을 똑바로 했는데 저놈이 끼어들어와 가지고 문제를 일으킨 거야. 인생의 이 돌발이 더 짜증 나요. 내가 잘못해서 문제를 일으키면 덜 짜증 나, 납득이 되거든. 그리고 내가 원인자이기 때문에 그냥 미안한 거예요. 그런데 상대적 돌발로 인해서 이런 문제들이 벌어졌을 때는 굉장히 안 좋아, 기분이. 그래서 제가 얘기하잖아. 인생이 고스톱하고 똑같아요. 든 패도 잘 들어야 되지만 뒷장이 얼마나 맞느냐가 굉장히 중요해. 그 뒷장과 관련돼서 이런 것들이 작동을 한다니까. 앞장은 내가 노력과 관련된 부분이고. 노력한다라고 다 되는 게 아니에요. 그게 조상과 관련되면 조상의 음덕이라고 하는 거고, 음덕이 있으면 양보가 생겨, 양의 과보가 생겨. 눈에 보이는 과보가 생기는 거고. 그다음에 이제 불교적으로는 명훈가피, 안 보이는 상황에서의 부처님의 가피, 이렇게 해서 일이 잘 유도리 있게 잘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 작용을 하는 거고. 그리고 이제 전통적으로는 쇳복, 쇠복이라는 뜻이에요. 돈복이라는 뜻이에요. 들어보셨어요? 세복, 이런 거 들어보신 분들은 이제 다 인생 잘 정리하셔야 돼요. 인생의 전환점을 이미 건넌 겁니다. 저는 90년대생이라서 제가 아는 건 저는 공부해서 안 거예요. 들어서 안 건 아니고 공부해서 한 거예요. 그래서 어떤 의미적인 부분에 있어서 그런 시기나 이런 것들이 있을 때 자신을 바로 하려는 생각을 한다는 거는 참 귀한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마음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유지되는 게 좋고, 죽은 뒤에 다른 세계가 있다면 거기서도 통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바르게 하려고 하는 그 마음, 그것의 귀함을 찾는 시간이 동지라는 말씀드리면서, 여러분들 동지 때 기도 열심히 하시고, 댁내에 행복과 부처님의 가피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리면서 오늘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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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불식] 회주계호스님 포교대상 고불식 법문
회주 계호스님 2023-12-13
뭐라고 말씀드려야 될지 모르겠네요. 너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제가 출가해가지고 살아가면서 ‘이게 절집 생활이 정말 제 생활이구나’, 한 번도 후회해보거나 한 번도 ‘내가 왜 여기 와서 이렇게 살지’ 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쭉 이어져가지고, 한 번도 환희롭지 않은 날이 없었고, 살아가면서 내가 ‘이 수행이 바로 삶이고, 내 생활이 바로 수행이구나’ 하는 걸 절절히 느끼면서, 오늘은 완전히 극락정토 연꽃 화장세계에 앉아 있습니다. 아까 우리 주지 스님이 <법등 계호>라 그랬죠. 네 제 호가 법등(法燈)이에요. 법 법자, 등불 등자예요. 법을 쭉쭉 이어나가 불법을 전하는 게 다 이 이름에 들어있어요. 우리 주지심은 뭐예요? 법해죠. 법 바다에요. 그러니까 사형사제가 아닐 수가 없어요. 우리 은사스님께서 “야, 법해가 네 상좌인 줄 아니” 그 말에 저는 항상 ‘제 상좌가 아닌데요. 사제인데요.’ 속으로 그러는데도, 잘 지내니까 좀 우리 스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근데 그게 정말 나쁜 말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제가 살아오면서 우리 스님이 참 알게 모르게 저희들을 이렇게 키우신 것이, 우리집 도반 스님들도 그렇고, 부잣집 절에, 잘난 절에, 잘난 은사 스님 밑에 살아가지고 맨날 그게 부러워가지고, 맨날 부자 절이라 그래요. 그렇지만 저는 부자 절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저희 마음이 부자인 줄은 알지만은, 부자 절은 아닌데 부자 절이라 하니까, 기도 잘하고, 신도들 많고, 또 스님네들이 많으니까 은근히 그게 조금 저기 한가 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자부심을 갖고, 진관사, 이렇게 대중들 모이고 스님네들 모이고 또 보살님들이 갖추어진 도량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래서 오늘 12월달은, 2023년 계묘년 12월 회향의 달이잖아요. 이 회향의 달은 사실은 2024년 갑진년을 준비하는 달입니다. 내년에 우리 주지스님 갑진해에요. 그래서 좌청룡 우백호가 모여있어요. 좌청룡은 재와 복을 불러들이고, 우백호는 나쁜 모든 재앙을 물리친다 그랬거든요. 복과 재물을 불러오는 건 용이고, 물리치는 건 호랑이예요. 그러니까 자연히 우리는 신장이 안 될 수가 없어요. 여러분들 제가 어제 그랬잖아요. 여러분들은 저희들이 신장님이 되어 주고, 저희는 여러분들이 신장이 돼가지고 앞으로 많은 일을 하면서 불법을 전하는 불자가 되어야 되지 않겠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오늘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제가 양주의 학에 대한 고사를 한번 말씀드릴게요. 양주의 학이에요. 옛날에 선비 4명이 자기의 소원을 이제 쭉 얘기하는데, 어떤 선비 하나는 “저는 아름답고 유명한 양주 고을의 자사가 되고 싶습니다.” 자사는 뭐예요? 요새 말하면 도지사나 뭐 이런 벼슬아치잖아요. 그러니까 두 번째 선비는 “저는 그만두고 거금, 그러니까 큰 금, 돈을 가지고서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또 한 사람은 뭐라고 얘기하냐면은, “저는 부귀 영화 다 싫고 신선이 돼가지고 학처럼 날고 싶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세 사람 소원은 다 얘기를 했죠. 양주 자사가 되고 싶고, 거금의 돈을 가지고 싶고, 그다음에 신선이 돼가지고 학이 되고 싶다 했는데, 마지막 한 사람은 뭐라고 그러냐면, “자기는 큰 돈을 허리에 두르고, 신선이 돼가지고, 학이 돼가지고, 양주 자사로 부임하고 싶다.” 그랬어요. 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죠. 세상에 욕심은 한도 끝도 없어요. 100억 가진 사람이 99억만 있는데 1억이 모자라니까 남의 거 뺏어가지고 100억 채우려고 하잖아요. 그렇듯이 우리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어요. 그러니까 마음의 욕심을 다 버리고 탐심의 욕심의 불은 삼계화택(三界火宅)과 같다 그랬어요. 이 불을 뭐로 꺼야 되나. 이 탐심의 욕심은 보시의 물로 꺼야 돼요. 보시물. 그다음에 진심 내는 거는 인욕의 물로 꺼야 됩니다. 참아야 된다 얘기예요. 그럼 어리석음은 뭘로 꺼야 되겠죠? 지혜의 물로 꺼야 돼요. 지혜. 그러니 우리는 항상 보시와 인욕과 지혜가 필요해요. 바꾸어 말하면 자비, 지혜, 원력이에요. 항상 자비와 지혜와 원력을 가지고서 모든 사람을 대하면 이게 다 나의 원이 되고, 여러분의 원이 되고, 모든 사람의 원이 돼서 앞으로 불교 발전은 따놓은 당상입니다. 안 해서 그렇지. 그렇죠. 하지 아니하면정 불가능한 건 없다 그랬어요. 불위야언정 비불능야(不爲也 非不能也)라. 제가 항상 말하는 게 자비보시는 시법왕자(慈悲布施 是法王子)라 그랬습니다. 아끼고 아끼는 거는 모든 마구니의 행동이고 보시하는 것만이 왕자라고 했듯이, 우리가 모든 걸 가지고서 베푸는 것밖에 없어요, 남는 거는. 주는 거, 베푸는 거, 보시하는 거. 자비와 베풂과 공덕과 지혜가 원력이 가지고 있으면은 다 이루어집니다. 여러분들이 안 된다고 하는 거는 안 해서 그렇지, 정말로 못해서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오늘 제가 쭉 출가해가지고 강사도 돼봤고, 학감도 돼봤고, 또 주지도 돼봤고, 종회의원도 돼봤고, 명사도 돼봤고, 칠증사도 돼봤고, 인례습의 다 해봤고, 포교대상도 탔습니다. 마지막에 남은 것은 여러분들과 함께 부처님되는 일입니다. 아셨죠.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우리 같이 부처님 되시고. 절로 절로 저절로. 어저께 원장 스님이 너무 많이 하니까 시끄럽다고. 그래서 제가 너무 죄송했고. 오늘 저희 스님이 저렇게 턱 앉아서 “야 니네들 아무리 잘한대도 나한테 뭐한 게 있니.” 여태까지 했습니다, 잘했어. “앞으로 더 잘 할게요, 스님. 정말 스님에게 누가 되지 않는 제자들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정말 저는 그래요. 자기 권속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같이 살면 사형사제고, 조금 연세가 많으면 사숙이고 조금 나이가 더 적으면 조카예요. 자기 상좌, 자기 동생, 자기 뭐 사제, 자기 이런 건 없어요. 다 우리가 천지가 동근이라 그랬고, 만물이 다 똑같다 그랬어요.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자연을 본받는다 하는데, 자연스럽게 살아가면서 열심히 정진하고 부처님 됩시다. 저하고 원력을 갖춰서 꼭 그렇게 합시다. 감사합니다.